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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09. 2023

열두 살에게 최악이란?

2.  3월 1일

 방학이 끝.났.다. 나는 결국 학교에 가게 될 것이다. 드디어 학교에 간다! 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 악당은 결국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의 ‘결국’이고, 드디어는 ‘그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를 만났다.’의 ‘드디어’다. 그러니까 나한테 학교는 드디어 가는 곳이 아니라 결국 가게 되는 곳이다. 

심지어 난 5학년이다. 벌써 5학년이 되다니,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1학년 때 5학년 교실에 간 적이 있었다. 교실 가득한 ‘5학년’들이 나를 보며 귀엽다고 했었는데, 

내가 그 ‘5학년’이 된 것이다. 내일 학교에 가서 ‘1학년’을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설마 귀엽다는 생각이 들까?  


 나는 5반이다. 과연 5학년 5반에는 어떤 아이들이 있을까? 

새 학기를 시작할 때 같은 반에 친한 여자 친구가 한두 명 있다면 편하다. 하지만 없다면, 

급식실에 갈 때도 혼자 가야 한다. 실내화를 갈아 신을 때 기다려주는 친구도 없을 거다. 

그건 너무너무너무 슬픈 일이다. 친구를 사귈 때까지 한동안은 외톨이로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거 같다. 

물론 이보다 더 힘든 상황도 있다. 그건 2학년 때 내 뺨을 때린 김수아와 같은 반이 되는 것이다! 

친했다가 멀어진 친구와 같은 반이 되는 건 정말 끔찍하다. 그보다는 차라리 혼자가 낫다!  


 방학 때 엄마랑 도서관에 갔는데, 거기서 수아 아줌마와 딱 마주쳤다. 수아도 옆에 있었다. 

아줌마는 생글생글 웃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엄마는 웃지 않았다. 

내 손을 꽉 잡고 도서관을 나와 “미친 여편네”라고 말했다. 

예전이라면 수아 아줌마랑 한참 수다파티를 했을 것이다. 

담임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나 쓰레기봉투를 문 밖에 내놓는 앞 집 이웃에 대한 불만 같은, 그런 수다 말이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엄마한테 수아에게 뺨을 맞았다고 말한 날이 기억난다. 

엄마는 깜짝 놀라며 수아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아줌마는 엄마에게 내가 수업시간에 콧노래를 불러서 수아가 집중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나나는 숫자보다 글자가 중요하다고 했고, 수아는 글자보다 숫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두 아이의 생각이 달라서 그런 일이 생긴 거 같다고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뺨을 때릴 수 있냐고 하니, 수아 아줌마는 


“전 뺨 말고 다른 데도 때리면 안 된다고 가르쳐요!” 


라고 말하는 바람에 엄마는 부들부들 떨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부터 엄마의 “미친 여편네!”가 시작됐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미친 여편네!”, 

설거지를 하면서도 “미친 여편네!” 내가 세상에 태어나 뺨을 맞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는 거랑은 완전히 달랐다. 몸이 흔들흔들했고, 엄청 아팠다. 

드라마에서는 보통 뺨을 맞고 나면 맞은 사람이 또 뺨을 때리던데 막상 그 상황이 되니 내 손은... 

얼음이 됐다. 손을 들어 올려 친구의 뺨을 때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콧노래 때문에 뺨을 맞다니, 콧노래는 내 습관이다. 그게 시끄러워 집중을 못한다고? 

수아한테 집중력이란 게 있는 건가? 솔직히 수아의 엄마 아빠를 뺀다면 누구라도 수아를 좋아하긴 힘들 것이다. 수아는 잘난 척 대장이니까! 쉬는 시간만 되면 숫자뿐 아니라 영어와 글자까지 있는 이상한 수학 문제를 보여주며 자기가 매일 푸는 문제라며 자랑을 한다. 솔직히 잘난 척하는 친구를 좋아하긴 힘들다. 수아는 왜 그걸 모르지? 하지만 난 수아와 파자마 파티까지 함께 한 친구이기에      


“그래 넌 참 똑똑해! 대단해!”      


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날은 왠지 수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우리 언니가 그랬는데, 대학 갈 때 진짜 중요한 건 수학이 아니라 국어래!”     


 언니는 등에 여드름이 있지만, 육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어 이럴 때 쓸모가 있다.       

 수아는 내 말이 틀렸다고 우겼다. 하지만 수아는 대학생 언니가 없으니 나를 이길 수 없다. 

부들부들 떨며 화를 내며 나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내 뺨을 때렸다. 선생님께 말씀드렸지만, 

선생님은 믿지 않으셨다. 


“설마...”라고 하셨다.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는 다 착할 거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난 착하게도 수아의 사과를 받고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손을 잡고, 끌어안고, 화해를 했다. 우리는 대충 친구로 잘 지냈다.      


나나야, 도대체 왜 그랬던 거니?


 우리의 파자마 파티는 끝났다. 엄마에게 수아 아줌마는 계속 “미친 여편네!”였다. 

다행히 3학년과 4학년 때 우리는 같은 반이 아니었다. 가끔 급식실에서 복도에서 마주쳤지만 점점 아는 척하기 싫어졌다. 못 본 척했지만, 사실은 살짝 봤다. 키는 나보다 작아 보였다. 잠을 많이 자야 키가 크는 법인데, 그 이상한 수학문제를 푸느라 잠도 못 자는 모양이다. 똑똑한 수아가 그걸 모른다. 


수아랑 같은 반이 안 되길 기도하고 자야겠다. 엄마도 기도를 하고 있을 거다. 

엄마는 내가 착하고 공부까지 잘하는 친구와 같은 반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친구 엄마까지 착하길 바랄 것이다. 이런 걸 두고, 금상첨화라고 한다. ‘금상첨화’와 같은 사자성어를 쓸 때 난 왠지 뿌듯하다! 

그리고 제발 할머니 선생님이 담임이 안 되길 바라고 또또또 바란다. 초등학교엔 왜 이렇게 할머니 선생님이 많은 걸까? 할머니 선생님은 마녀이거나 천사이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마녀일 확률이 훨씬 높다. 

심각한 문제다. 

할머니 마녀 선생님이 담임이 되는 게 나을까? 내 뺨을 때린 수아랑 같은 반이 되는 편이 나을까? 

확실한 건 둘 다 최악이라는 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럭저럭 평범한 나에게 그런 최악의 상황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최악은 그럭저럭 일기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 나나는 과연 최악의 상황을 맞았을까요? 다음 일기는 내일 공개됩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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