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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08. 2023

그럭저럭 일기장이란?

1. 

오랜 시간(그래봐야 12년이겠지만) 관찰을 통해 알아낸 게 있다. 

어른들이 누군가와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럭저럭’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옆집 아줌마도 이 말을 쓰고, 추석이나 설에 만난 고모나 할머니도 이 말을 쓴다.      

 “그럭저럭 지내지 뭐.”      


 내 생각에 이 말은 로또에 당첨되거나 하는 대단한 행운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행한 일, 

예를 들면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져 발가락이 부러지는 일 따위는 없었다는 뜻이다. 

행운의 파도도, 불행의 쓰나미도 없는 그런 상태. 어른들은 왜 이런 말을 주고받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배가 아플 만큼 기가 막히게 좋은 일은 없으니 안심하라는 뜻인가? 

암튼 아주 친한 사이에서 주고받는 말은 아닌 게 분명하다.     


 내 또래 아이들은 ‘그럭저럭’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식 날 만난 친구가 “그럭저럭 지냈어!”라고 말하는 걸 들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난 이 말을 쓰기로 했다. 난 그런 오묘한 뜻이 담긴 어른의 말을 쓸 줄 아는 열두 살이다. 

7살 때 초등 고학년 추천도서를 읽은 나다. ‘마틸다’와 ‘나니아 이야기’ 그런 유명한 책들 말이다. 

심지어 난 1학년 때 해리포터 시리즈에 읽기 시작했다. 

전 시리즈를 한 번에 쭉 읽은 건 4학년 겨울방학이 처음이지만.

 

아! 그리고 그때 내 인생을 흔들 운명의 책을 만났다. 제목이 ‘모모’. 난 그 책을 언니 방 책장에서 찾았다. 

나는 종종 언니가 없는 방에 들어가 엉망진창 책장을 탐험하는 걸 좋아하는데, 

언니의 책장에는 언니가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도 있고 수능 문제집도 아직 있다. 

대학생이 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저런 걸 버리지 않고 쌓아두다니! 엄마가 언니를 혼내는 이유가 있다. 

그래도 언니는 대단하다고도 생각한다. 그 이유는 언니가 읽는 책 중에는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책도 많기 때문이다. 언니의 책장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다.

 ‘모모’를 발견한 날도 그랬다. 이른 아침이었는데, 언니는 기숙사에 갔고,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엄마, 아빠는 아직 자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나만 깨어 있었던 거다! 

문득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언니 방으로 가 책장 탐험을 시작했는데 책장 맨 아래 칸 구석에 

노란빛이 나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도 책장 탐험을 많이 했는데, 왜 지금 눈에 띈 거지? 

좀 두꺼운 책이긴 해도 확실하게 동화책 느낌인데, 왜 아직 언니 책장에 꽂혀있던 거지? 

그것도 이렇게 구석에? 이런 게 운명적 만남인가!    


 ‘모모’는 책 제목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의 이름이다. ‘마틸다’도 그렇고, ‘제인 에어’,  ‘돈키호테’도 그렇다. 

책 제목이 주인공의 이름인 책. 세계 명작 시리즈에서 읽은 ‘테스’도 그렇다! 모모는 오래된 원형 극장 터에 혼자 산다. 나이를 묻는 어른에게

“어른들은 우리를 만나면 늘 나이를 묻는다! 왜 그러세요?”라고 대답한다. 


자기가 백 살, 백두 살이라고 말할 만큼 숫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런데 이 아이가 인간들의 시간을 빼앗아 가는 끔찍한 회색 신사들과 싸워 인류를 구한다. 정말 재밌다! 

이 용감한 주인공 아이의 이름이 ‘모모’다. 그런데 ‘모모’와 내 이름 ‘나나’의 느낌이 비슷하지 않나?   

   

 모모! 나나! 모모! 나나!      

내 이름은 박나나다. 모모를 읽기 전까지 난 내 이름이 아주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내 이름을 들은 아이들은 바나나를 떠올린다. ‘바나나’라고 놀린다! 짜증 나!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이름이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모모’는 분명 여러 번 읽게 될 내 운명의 책이다. 

책은 이미 너덜너덜 낡아 있었다. 책 표지를 열면 책장 한 덩이가 툭 떨어진다. 

언니도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나? 언니에게도 ‘모모’는 운명의 책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운명의 책이 있는 열두 살이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있다.

 애석하게도 나라는 인간이 너무나 평범하다는 거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거나,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 주디처럼(본명은 재루샤 애벗이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주디가 본명인 줄 아니까) 무서운 원장 선생님이 있는 고아원에서 살았던 적도 없다. (모모도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렇다고 얼굴이 똑같은 쌍둥이 동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내가 쓴 일기는 100년 후 어떤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이 된다 해도 ‘안네의 일기’처럼 멋진 책이 될 리 없다. (엄마 아빠가 심하게 다투면 드디어 내 인생이 특별해지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지금 나의 열두 살은 확실히 ‘그럭저럭’이다. 특별할 게 없는 열두 살 인생. 하지만 내가 읽은 수많은 동화 속 주인공 소녀처럼 나도 뭔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쓴 책이 누군가에게 운명의 책이 되길 바란다! 먼 훗날 내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롤링처럼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 (이미 집필 중이다! 제목은 ‘이스티아의 카시니아들’이고, 내용은 극비다.) 

나의 이 ‘그럭저럭 일기장’을 출간하고 싶다는 출판사가 줄을 설 것이다. 결국 나는 부자가 될 것이다!       

근데 생각해 보니 딱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긴 하다. 이걸 특별하다고 해야 하나? 놀랍게도 나는 아직 스마트폰이 없다! 여러분, 대한민국에 스마트폰이 없는 열두 살이 있어요! 이거 아동학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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