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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10. 2023

열두 살에게
좋은 선생님이란?

3. 불행과 다행 사이. 

3월 2일 


 “긴급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현재 우리 아파트에 좀비가 나타났습니다. 

  절대 문을 열지 마시고 5층 이하에 사는 주민들은 열린 창문이 없는지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좀비가 들어오고 있었다. 집에는 엄마랑 나만 있었다. 

급히 현관문을 열고 나와 도망을 가는데 토토를 두고 나온 것이다. 

토토는 3학년 때 이케아에서 산 레트리버 강아지 인형이다.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엄마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엄마 손에 잡혀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무리 내려가도 또 계단이 있었다. 

마음은 급하고 다리는 꼬이고 그렇게 엄마 손을 놓치고 넘어지려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좀비가 없다는 걸 알지만, 자꾸만 좀비 악몽을 꾸게 된다.


이 정도면 좀비가 있는 거 아닌가? 좀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5학년 5반 교실을 찾아 들어갔다. 급식실이 있는 건물 4층이고, 복도 끝이다. 

들어가자마자 교실 가운데 앉은 ‘수아’가 딱 보였다. 악몽을 괜히 꾼 게 아니었다. 

아주 도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나가며 곁눈으로 볼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꽤 예뻐 보였다. 

키는 나보다 작지만, 날씬하고 얼굴에 여드름도 없다. 난 여드름이 있다. 

어떻게 여드름이 없는 거지? 수아가 너무너무 부럽다.            

   

그뿐인가?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이상한 수학문제를 계속 풀었을 테니, 

수아는 지금 엄청나게 똑똑할 것이다. 사실 2학년의 난, 구구단도 외우지 못했다. 

다행히 지금은 구구단은 외웠다. 그렇다고 경시대회 수준의 수학문제를 풀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수학 실력으로 수아를 이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여드름은 다른 문제다. 

여드름이 난 내 얼굴은 끔찍하다. 여드름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드름은 왜 나는 걸까? 

언니는 내 얼굴에 난 여드름을 짜고 싶어서 난리다. 나는 언니의 등에 난 여드름을 짜본 적이 있는데 

진짜 웃겼다. 언니는 아프다고 소리를 꽥꽥 지르고 나를 째려봤다. 


큭큭 대학생이 되면 등에도 여드름이 난다! 그걸 알고 있는 초등학생은 나밖에 없을 거다. 


 1학년,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던 그림을 엄청 잘 그리는 다정이도 같은 반이다. 

영어 소설책을 가방에 넣지 않고 늘 손에 들고 다니는 예은이는 작년에도 올해도 계속 같은 반이다. 

항상 반에서 제일 예쁜 여자 아이와 커플이 되는 잘생긴 강민이도 또 같은 반이 됐다. 

유치원도 같이 다니고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주동한은 엄청 조용하고 슬픈 강아지 같은 아이였는데 

갑자기 까불이가 되어 나타났다. 의자 위에 올라가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의자를 손에 들고 막 흔든다. 


왜 저렇게 된 거지? 예전에 알던 친구들도 5학년이 돼서 만나니 왠지 달라 보인다. 

내 얼굴도 친구들 눈에 달라 보일까?      


 3학년 때 아빠가 교통사고를 냈다. 화장실이 너무 급해 일어난 사고였다고 한다. 

불법 유턴을 했는데, 마침 달려오던 트럭을 보지 못해 부딪힌 것이다. 엄마는 엄청 놀랐다. 

이런 갑작스러운 불행은 다른 불행과 손을 잡고 온다고 했다. 

불행과 불행이 왜 손을 잡지? 엄마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그땐 이해를 못 했다. 

그런데, 교실에 앉아 있는 수아를 발견하고 엄마가 말한 그 다른 불행이 생각나 갑자기 무서웠다.   

담임선생님이 마녀 할머니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교실 뒤에 키가 큰, 삼촌 같은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빠보다 젊어 보였다. 나는 그분이 담임 선생님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난 불행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그분이 성큼성큼 교실 앞으로 걸어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 담임선생님이야! 반가워!”      


 대한민국 초등학교에서 이렇게 키 크고 잘생긴 남자 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날 확률은 몇 프로일까? 

이건 기적이다! 게다가 선생님은 엄청 유능하신 거 같다. 

흥분한 동한이가 의자를 들고 흔들자,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시작하셨다.      


“오! 멋진데? 잘 찍어서 동한이 어머니한테 보내드려야겠다.”     


동한이는 의자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더니 손을 모아 빌며 선생님한테 큰 절까지 했다. 

선생님은 껄껄 웃으시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덕분에 우리 반 아이들이 다 같이 웃었다. 

이런 게 바로 ‘행복한 교실’이다. 생각해 보니 아빠가 교통사고가 난 날, 그 일 말고 다른 불행은 없었다. 

아빠가 많이 다치지 않은 것도 생각해 보면 불행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수아랑 같은 반이 된 것도 불행이 아니면 좋겠다. 그렇다고 내 뺨을 때린 수아를 용서한 건 아니다. 

아직도 내 뺨은 얼얼하니까.      


 선생님의 이름이 엄청 특이하다. 백록담. 사람 이름이 백록담이라니...  

백록담은 한라산 정상에 있는 호수 이름 아닌가? 물론 내 이름도 평범하다고 할 순 없다.      


“박나나? 이름이 나나? 바나나?”      

지금까지 내 이름을 들은 친구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랬다. 제대로 놀릴 거리를 찾았다는 듯 낄낄 웃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일은 오랫동안 바나나였다. 다행히 ‘모모’를 만난 후 내 생각은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바나나가 좋아진 건 아니다! 왜 내 이름은 나나일까? 

평범하게 박혜린, 박지영, 박민아 이런 이름이었다면 어땠을까? 

언니 이름은 박지수인데, 왜 내 이름은 노란 바나나인가! 말이다. 

선생님도 예전의 나처럼 백록담이라는 이름을 싫어할까?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록담입니다.”

“성이 백 씨는 아니죠? 쌤!”

“아니요, 전 백 씨입니다. 백. 록. 담”     

크크크 웃기다. 


백록담 선생님 죄송해요!       




*아직은 즐거운 5학년 5반 교실입니다. 이 행복, 계속될 수 있을까요? 

주말 지나 월요일 아침에 다음 이야기 공개합니다. 

날씨가 쌀쌀하네요,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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