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3월 4일
수학책을 펼치니 첫 페이지 첫 줄에 ‘수학은 내 친구’라는 다소 황당한 문장이 있다.
(‘다소 황당한’이란 말은 뉴스에서 많이 봤는데, 나도 한번 써본다! )
내 책상 주변의 아이들은 모두 ‘친구’에 X표를 하고 ‘원수’라고 고쳐놓았다!
‘수학은 내 친구’ -> ‘수학은 내 원수!’
물론 수아는 수학을 원수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수학을 친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구구단 외울 때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 진짜 구구단 어떻게 외운 거지?
지금 우리 교실에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는 거 같다. 어쨌든 우린 5학년이니까.
친구들아, 우리 구구단 어떻게 다 외운 거야? 싫어! 끔찍해.
사실 수아가 내 뺨을 때린 그날, (사건의 전말은 02화 열두 살에게 최악이란? (brunch.co.kr) 일기 참고)
수아에게 하지 않은 말이 있다. 언니가 한 말을 전부 다 수아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언니는 대학에 갈 때 수학보다 국어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 뒤에 결국은 수학을 잘해야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이 말을 해줬다면 수아는 내 뺨을 때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말을 수아에게 말해주기가 싫었다.
내 마음이 그랬다!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나는 왜 수학이 싫을까?
글자는 모이면 이야기가 된다. 재미있다. 그런데 숫자는 모이면, 어쩌라는 건가? 모르겠다.
머리가 아프다. 답답해진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수아에게 물어보고 싶다.
“수아야, 너 수학문제를 푸는 게 정말 좋니?”
수학 시간에 집중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어쩌다 보니 수학 교과서에 손을 그렸다.
정말 나도 모르게 그린 거다. 그리고 막대 사탕도.
그리고 수학 공부하는 게 싫어서 머리에서 김이 펄펄 나는 내 모습까지 그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백록담 선생님이 내 옆에 서 있었다. 아주 조용히.
깜짝 놀란 내가 선생님을 쳐다보자,
“나나, 그림을 정말 잘 그린다. 이 그림 진짜 재밌는데?
머리에서 김이 펄펄 나네? 수학시간이 괴로워서 그런 건가?”
칭찬을 들은 건지, 혼이 난 건지 모르겠다. 아이들 몇 명은 웃었지만, 웃지 않은 애들도 있었다.
다정이랑 까불이 주동환은 웃었겠지.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셨으니 분명 칭찬인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수학시간이다.
이런 칭찬에는 우쭐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백록담 선생님은 교과서에 낙서나 하는 날 혼내지 않으셨다는 거다.
물론 다음에 또 낙서를 하면 아마 혼을 내시겠지. 오늘처럼 칭찬 비슷하게 혼내는 걸로 넘어갈 리 없다.
어떡해! 난 수학 시간에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어!
“여러분, 모모는 숫자 백이 뭔지도 몰랐지만 회색신사들로부터 인류를 구원했다고요!”
수업이 끝나고 다정이가 내 그림을 보겠다고 제일 먼저 달려왔다.
다정이는 깔깔 웃었다. 자기도 그림을 그렸는데, 선생님한테 안 걸렸다며 좋아하기까지 했다.
다른 친구들도 한 명씩 내 자리로 와 그림을 보고 재밌어했다.
수아는 오지 않았다. 왠지 수아가 흘끔 내 자리 쪽을 돌아본 것도 같은데, 아닌가?
아마도 자존심 때문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수아는 아직 내 뺨을 때린 걸 기억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증거!
엄마가 언젠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맞은 사람은 다리를 쭉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다리 뻗고 못 잔다!'
진짜? 하지만, 저 도도한 수아가 고작 내 뺨 한 대 때린 걸 갖고 다리를 못 뻗는다고? 아닐 거 같다.
수아는 그런 애가 아니지. 그럴 리 없다! 흥!
아무리 생각해도 백록담 선생님은 최고다.
대부분의 선생님은 수학시간에 그림이나 그리는 날 절대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낯선 친구들 앞에서 혼나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다음 수학 시간에는... 집중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낙서하고 그림 그리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
수아를 너무 예쁘게 그렸네. 어쨌든 그렸으니까...
강민이는 쫌 잘생겼지. 아무리 그래도 별까지 그려준 건... 나나야 너 정말 왜 이래!!
다정이는 눈치가 없지만, 우리 반 최고 멋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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