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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14. 2023

꼰대와 끔찍한 기억

5. 3월 7일  그리고  3월 10일 

3월 7일       

 

 국악시간에 난타를 했다. 싸이의 노래에 맞춰 북을 쳤다. 

북이 뚫어져라! 찢어져라! 아주 세게 꽝꽝 꽝! 두들겼다.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어른들은 우리들이 엄청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열두 살에게도 스트레스는 있다. 불행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진짜 북이 찢어질까 봐 그러셨는지 음악 선생님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4반에는 북채를 부러뜨린 아이까지 있었다고 하셨다. 다행히 선생님은 인내심이 엄청난 분이라  

끝까지 우리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수아가 내 옆에서 북을 쳤는데 얼마나 재미없게 치던지. 

그냥 힘없이 동동 동동. 수학문제집을 많이 풀면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않나?  

수아는 수학을 잘해서 그런 스트레스가 없는 건가? 그래도 왠지 풀 죽어 보이긴 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수아는 잘난 척 쟁이지만 그래도 재밌는 친구였는데, 요즘은 통 말도 없고, 친한 친구도 없는 거 같다.    


국악실은 교실이 있는 건물이랑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운동장도 지나고 화단과 연못도 지난다. 

연못에는 가끔 신발주머니가 빠져있는데 오늘은 없었다. 

화단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있는 1학년 아이들이 보였다. 

키가 엄청 작았다. 이상하게도 진짜 귀여워 보였다!        


“좋을 때다! 나도 저 때로 돌아가고 싶네!”

“니들 구구단은 외웠냐? 나중에 고생하지 말고 빨리 외워라!” 

“야! 너 그런 소리하면 꼰대다!”       


1학년 아이들을 보자 너도 나도 한 마디씩 했다. 우리 진짜 5학년 됐나 봐!         


 대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던 언니가 집에 왔다. 엄마는 음식을 만들고 있다. 

닭을 튀겨서 양상추와 같이 소스에 적셔 먹는 유린기랑 언니가 특히 좋아하는 마라탕.  

난 유린기를 좋아했지만, 요즘은 마라탕이 더 맛있다. 

맛있는 걸 먹는 건  즐겁다.  

하지만 엄마가 이 맛있는 걸 내가 아닌 언니를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질투가 난다! 정신 차려, 나나야! 질투 같은 건 열두 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저녁을 먹고 언니랑 같이 샤워를 했다.  언니 등에 난 여드름도 세 개나 짜주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언니와 내 방 침대에 누워 수다 파티를 했다.   


“엄마가 문제집 풀어라! 할 때마다 너무 짜증 나! 수학 문제집 꼭 풀어야 해?”

“아마도 풀어야 할걸! 나나야, 수학문제집 풀 때 엄마를 위해서 풀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해서 풀어...”

“뭐야? 언니 꼰대 된 거야? 

 하긴 5학년도 꼰대가 되는데, 언니가 꼰대 되는 건 당연하지. 그래도 언니 쫌 실망이다.”

“...”

“언니?”

“...”

“언니??”


언니가 울고 있었다. 나는... 언니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딴 소리를 했다.     


“나 언니 책장에서 모모 찾았다!”

“진짜? 우리 나나, 모모 읽었어?”

“그럼! 그 자리에서 다 읽었지!”

“어땠어? 재밌었어?”

“응! 엄청 재밌었어! 언니 혹시 이 책 여러 번 읽었어? 밑줄도 막 있던데?”

“여러 번 읽었어. 마음이 급해질 때 가끔 읽어 지금도. 언니 학교 도서관에도 그 책이 있거든.”

“그래? 나도 한 번 데려가줘! 거기 가서 모모 읽으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   

“그래, 나중에 데려갈게.”     


언니가 다니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나의 운명의 책 ‘모모’를 읽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언니가 울면 나도 슬퍼진다. 사실 난 언니가 우는 이유를 알 거 같다. 

하지만 말하진 않을 거다. 왠지 그래야 할 거 같다. 


내 생각에... 인간은 항상 발랄할 수는 없는 일이다.          


        

3월 10일


나는 망했다. 완전히 폭싹 망했다.  

수아랑 같은 반인 것도 싫은데, 같은 모둠까지 된 것이다. 

잘 생긴 강민이와 그림을 잘 그리는 다정이도 같은 모둠이다. 


과학과 미술을 같이 배우는 과학+미술 시간에 태양계가 그려진 도안을 수채물감으로 색칠했다. 

(숫자도안을 색칠하면 수학+미술 시간이 되는 건가?)

그런데 수아가 색칠할 때 물을 자꾸만 발라 종이가 다 젖어버려 엉망이 됐다. 

솔직히 그림 그리기는 내가 수아보다 잘한다! 다정이보다는 못하지만. 

수아는 그림을 망친 게 짜증이 났는지 계속 말도 안 하고, 표정이 어두웠다. 

우리는 다 같이 수아 눈치를 봤다. 괜찮다고 말해주느라 힘들었다. 

나도 그냥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비록 내 뺨을 때린 원수지만,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난 정말 나쁜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다정이가 엄청 깔끔하게 색칠을 잘했는데, 수아 때문에 자랑도 못했다. 그때 강민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모두 수아한테 괜찮다고 말하니까, 우리 모둠 이름을 ‘괜찮아 모둠’으로 할까?”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망설였는데, 

갑자기 다정이가 박수를 치며 웃는 거다. 

그렇게 웃을 일은 아니었는데...

솔직히 다정이는 그림은 잘 그리지만,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 그리고 이건 거의 확실한 건데, 다정이는 강민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강민이는 확실히 수아만 걱정한다. 어쩌면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강민아! 너 혹시 아니? 수아는 내 뺨을 때린 아주 무시무시한 아이란다!! 


결국 우리 모둠 이름은 ‘괜찮아 모둠’이 됐다. 괜찮아 모둠은 그림은 잘 그리지만 어색한 다정이와 

내 뺨 때린 수아, 잘생긴 강민이, 그리고 내가 팀원이다. 


선생님이 누가 팀장을 하겠냐고 물어보셔서 손을 들었는데, 모둠원 중 나만 들어서 내가 팀장이 됐다. 

사실 난 모둠 팀장 하는 게 좀 재밌다. 어쩌면 리더십이라는 게 나한테 있는 걸까? 훗.

             

백록담 선생님이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걸 알게 됐다. 

선생님은 나에게 ‘키위랑 브로콜리 어린이집’에 이제 다섯 살인 둘째 아이를 보낼 계획이라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키위랑 브로콜리 어린이집은 이름만큼이나 끔찍한 곳이에요. 

 밥을 뱉고 싶으면 선생님한테 허락을 받고 

 화장실까지 걸어가 변기에 밥을 뱉고 물까지 내려야 하거든요. 

 변기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토할 뻔했어요.  

 그리고 종합장에 ‘다람쥐’를 써야 해요, 못 쓰면 바보 취급을 받아요.”  


선생님은 죽은 쥐라도 본 듯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럴 만도 하다. 

다섯 살에 끔찍한 어린이집을 다닌 기억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법이니까.     


괜찮아 모둠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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