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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15. 2023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지!
'나만의 탄생 비화'

6. 3월 16일 

3월 16일     


새로운 친구가 전학 왔다. 이름은 정하나. 우리 괜찮아 모둠에 들어왔다.       

나보다 키가 크고, 성숙해 보인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슬퍼 보인다.   

말도 없고,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다. 

2학년도 아니고, 5학년에 전학을 왔으니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전학이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백록담 선생님을 만난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나가 나타나기 전엔 우리 반 여자 아이들 중 내가 제일 컸는데, 지금은 하나가 제일 크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그 사실을 말했더니 엄마 기분이 확실히 나빠진 거 같았다. 

엄마는 내가 5학년이 되고 같은 반 여자 아이들 중 가장 키가 크다는 사실에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눈물까지 흘렸다니 왠지 우리 엄마가 이상해 보일 거 같다. 

이유가 있긴 하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 이십칠 주 만에 천팔십 그램의 이른둥이로 탄생했다. 

(탄생이라는 말은 예수님에게나 쓰는 말이지만 이건 나만을 위한 그럭저럭 일기장이기 때문에 

 내 맘대로 탄생이라고 써본다.) 

아주 오래 인큐베이터에 있었다고 한다. 아기 때 찍은 내 사진을 보면 코에는 산소가 들어가는 가는 관을, 

입에는 젖이 들어가는 관을 붙이고 있다. 얼굴엔 온통 반창고가 붙어 있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이 한글을 가르치고, 영어 학원을 보낼 때 오로지 내 몸무게 늘리기에 

모든 열정을 쏟았다고 했다. 

나는 수영장을 다니며 하루에 밥을 네 번... 네 번 먹었다.  

엄마가 친구랑 전화통화를 할 때면 뽐내듯이 말하는 걸 들었다.      


“나나는 하루 네 끼를 먹었잖아! 밤을 얼마나 삶아 먹였게!”             


 불행히도 난 지금 뚱뚱한 편이라 엄마를 원망한다. 

어쨌든 5학년이 되고 우리 반 여자아이들 중 내가 가장 크다는 사실에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었다.  

       

“어쨌든 이 동네 여자 아이들 중에선 우리 나나가 일등이야!” 

“전학 온 하나도 이 동네 여자 아이 아니야?”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잖아.”

       

엄마는 가끔 이상해진다. 그래도 학원을 엄청 많이 보내고 저녁밥도 주지 않는 다른 엄마들에 

비하면 꽤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강민이는 학교가 끝나면 교문 앞에서 수학 학원차를 타는데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밤 10시 반이라고 했다. 학원이 끝나는 시간은 10 시인 거다. 

수아는 물어보나 마나 지금도 그 이상한 수학문제를 매일매일 풀고 있을 거다. 학원도 다니겠지.  

예은이의 영어학원도 밤 10시에 끝난다. 숙제를 다 하면 새벽 2시. 그때 잔다고 했다. 

언니가 다닌 영어학원도 10시에 끝난다고 했는데, 

학원은 다 같이 10시에 끝나기로 약속을 한 건가?      

모모가 이 사실을 알면 분명 회색 신사의 짓이라고, 분노했을 일이다.      


 사실 난 이른둥이로 태어나 귀찮은 일이 많다. 

난 병원에 자주 검사를 하러 가는데 특히 폐 기능 검사가 진짜 힘들다! 

끝까지 힘을 내서 후! 길게 불어야 하는데 난 숨이 부족하다. 최선을 다해 불지만 곧 힘이 빠진다.    

내가 후 불면 모니터에 빨간 커튼이 열린다. 아주 세게 불어서 확 열어젖혀야 하는데

내 숨으로는 조금만 열린다. 커튼 안쪽엔 수영장이 있다.

커튼이 열리면 튜브에 엉덩이를 넣고 앉은 아저씨가 있다.

아직 아저씨 발은 못 봤다. 커튼이 다 열리면 뭐가 있을까? 평생 그 커튼을 열지 못하면 어떡하지?    

검사실 선생님과 엄마는 계속 더더더더더!!! 하며 나를 다그친다. 

그럴 때 난, 머리가 핑 돈다. 엄마는 이런 내가 불쌍한 모양이다. 왠지 모르게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내가 학원에서 10시까지 공부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 같다. 다행인 건가? 

난 학교에서 돌아온 후 내 방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며 책을 본다. 

책 속에는 이상하고 재밌는 친구가 많다. 

하지만 학원대신 수영장에 가야 하고, 토요일에는 산에도 가야 한다.  

그나마 수영장은 가끔 가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산은 끔찍해!!  

아빠는 내가 건강해지려면 산에 가야 한다고 했다.

물론 난 지금도 충분히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만,

폐기능 검사할 때 그 빨간 커튼을 열려면 더 큰 힘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산을 올라갈 때, 그 숨 막히는 기분을 생각하면...       


하나님, 제발 토요일에 비가 오게 해 주세요! 저는 산에 가는 게 너무 싫어요!  

근데, 하나님...  혹시 아세요? 

그 하나라는 친구 눈은 슬픈 이유. 그냥 궁금해서요. 


오늘 기분이 좀 이상하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된 거 같기도 하고...

나 왜 이러지? 잠이나 자자. 


한번 그려봄 내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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