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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17. 2023

와이시리즈 중 '사춘기와 성'이 낡아 있는 이유

8. 3월 18일 : 끔찍했다 티볼 시간.

3월 18일 


생리 때문에 재미있던 티볼 시간이 끔찍해졌다. 

심지어 나는 평소처럼 걷지도 못한다! 

체육 선생님께 배가 아파서 티볼을 못한다고 말했다. 

체육 선생님은 여자다. 당연히 생리를 하실 테니 날 이해해 주실 줄 알았는데,

별로 그런 거 같지 않았다. 하긴 생리를 시작하는 여자 아이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나처럼 체육 못한다고 하는 아이도 한두 명이 아니니, 그럴 수 있다.  

선생님은 내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셨다. 

어떤 눈이면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생리를 시작한 아이로 보일까 고민했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 비밀을 감춘 듯, 조금은 혼란스러운 듯, 평소와 다른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의 솔직함을 증명하기 위해 나도 선생님의 눈을 끝까지 바라봤다. 나, 눈 싸움 한 건가?

잠시 후, 비로소 선생님은 나의 생리를 눈치 채신 거 같았다. 내 느낌은 확실히 그랬다. 

     

“우리 친구, 배가 아프구나. 티볼을 못할 정도로 아프니?”     


선생님은 왜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지? 이유를 모르겠다.       


“당연히 아프죠. 제가 티볼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지금은 걷는 것도 힘들고, 서 있는 것도 힘들어요. 운동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제 엉덩이만 보는 거 같아 끔찍하다고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네, 그 정도로 아파요.”라고만 대답했다.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나에게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체육 선생님의 피는 분명 차가울 거다. 

학교에는 따듯한 피가 흐르는 백록담 선생님 같은 분도 있지만, 

차가운 피가 흐르는 선생님도 있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 

만약 체육 선생님의 피가 따듯했다면, 한숨대신 미소를 지으며, 금방 익숙해질 테니 

이번 시간엔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있거나, 그것도 힘들면, 보건실에 가서 좀 쉬어도 된다고 했을 것이다.

물론 생리를 시작하는 여자 아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체육 선생님 입장에선 뻔하고, 흔하겠지. 

하지만, 선생님! 저는 지금 걷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엄청 힘들다고요!!!


 스탠드로 가니 거기 며칠 전 전학 온 아이, 하나도 앉아 있었다.  

혹시 얘도 나처럼 생리인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냥 하나와 나란히 앉아 친구들이 티볼 경기하는 걸 구경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생리 생각뿐이었다. 생리가 바지 밖으로 나오면 어떡하지?

바지가 빨갛게 물들면, 친구들이 모두 알게 될 텐데... 그런 무시무시한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하나는 그냥 좀 멍한 표정이었는데, 그때 갑자기 얘도 나처럼 생리를 하고 있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확신 같은 말은 5학년 아이들이 쓰지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난 이런 단어를 쓴다.

 ‘난해하다’, ‘응시하다’와 같은 수준의 말이다.) 

그리고 구부린 등 쪽을 보니 하나도 브라를 했다. 

키가 큰 여자 아이에게는 브라와 생리가 빨리 오는 건가? 

우리 엄마가 하루에 밥을 네 번 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예은이처럼 작은 아이로, 생리 없이 살 수 있었을까? 하지만 언니도 어제 5학년에 생리를 시작했다고 했다. 엄마도 5학년에. 그럼 우리 언니가 딸을 낳는다면 또 5학년에 생리를 시작하게 될까? 하나의 엄마도 5학년에 생리를 시작하셨을까? 머리가 복잡할 땐 그냥 말을 하는 편이 낫다.       


“하나야,... 나 생리 중인데, 혹시 너도?”     


주변에 아무도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속삭이듯 말했다. 

하나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생리는 아니었나 보다. 생리도 아닌데 왜 티볼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거지? 

그리고 왜 말을 안 하지? 하나가 제대로 말하는 걸 못 본 거 같다. 무슨 걱정이 있나? 

우리 ‘괜찮아 모둠’에 왔으니, 괜찮아지면 좋을 텐데. 

하나가 생리를 한다고 했으면 이런저런 속마음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나는 지금 생리에 대해 이야기할 친구가 필요하다. 수아는 생리를 시작했을까? 

여드름도 아직 안 난 수아가 생리를 할 리가 없지.      

 

 엄마랑 생리에 대해 대화를 나눴는데,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아주 뻔한 대화였다. 

엄마가 너무 내 눈치를 보며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난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엄마는 왜 모르지? 어린이 도서관에 꽂힌 와이 시리즈 중 유독 ‘사춘기와 성’ 편이 

너덜너덜 낡아있는 이유를. 그 책 때문에, 아니 덕분인가? 

암튼 우리들은 생각보다 일찍 사춘기와 성에 대해 알게 된다.         

엄마, 난 열두 살이고,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어요, 

‘사춘기와 성’도 당연히 읽었죠.  

엄마도 한 번 읽어보세요.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학교에서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은 바로 '내 몸은 소중하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 이미 알고 있어요. 내 몸도, 친구의 몸도 엄청나게 소중하다는 걸! 



왠지 눈이 슬퍼보이는 전학온 친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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