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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23. 2023

우리는 모두 콩나물을 좋아한다!

12. 4월 14일:우정 폭발 대환장 파티

4월 14일      


 오늘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예은이랑 급식을 먹고 운동장으로 나왔는데 스탠드에 하나가 혼자 앉아 있었다. 

전학을 왔으니 아직 친구가 없고, 그래서 혼자 앉아 있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하나는 체육 시간에도 저렇게 혼자 앉아 있다.

급식 시간에도 저러고 있었다니... 

'괜찮아 모둠'의 팀장으로서 하나가 혼자 앉아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예은이랑 같이 하나 옆으로 가서 앉았다. 

하나는 우리를 별로 신경 쓰는 거 같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하나 옆에서 오늘 급식에 나온 끔찍한 나물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바로 연두색 식물이 베이지색 양념에 버무려져 있던 나물. 

급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면 그린퇴식구에 가서 초콜릿을 받을 수 있지만 

나는 이 나물을 보는 순간 포.기.했.다. 

그리고 어제 급식에 나온 고구마 줄기 나물 무침도 곤죽을 만들어 바다에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하나가 살짝 웃었다. 


하나야, 너도 나물 싫어하니? 


이때, 지나가던 다정이가 우리 옆에 와서 앉았다. 

다정이는 오늘 급식으로 나온 그 끔찍한 나물의 이름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줬다. 

머위나물이었다. 급식표에서 몇 번 본 것도 같다. 

다정이는 그 나물의 이름을 알려주고 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나물의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나는 솔직히 다정이가 좋아하는 나물은 궁금하지 않다. 

예원이도, 하나도, 그랬던 거 같다. 

이름도 모르는 나물들이 얼마나 끔찍한지 이야기할 때가 더 재밌으니까. 

그래도 다정이가 즐거워 보여서 그냥 들어주었다.      


선생님들은 어린이날 기념 체육대회를 준비하시느라 인조 잔디 운동장에 콘을 깔고 있다. 

반 대항 피구경기를 준비하시는 모양이다. 

문득 하늘을 봤는데, 여러 개의 하얀 구름이 둥실 떠있었다.  

하늘은 마치 푸른 바다에 흰 물감을 떨어트린 것처럼 아름다웠다.


사탕구름, 토끼 구름, 별구름...

이런 구름, 저런 구름, 형태가 다른 구름에 이름을 달아주고 있는 데,      

 

“하나야, 넌 왜 말을 안 해?”

“... ”

“넌 어떤 나물 좋아해?”     


눈치 없는 우리의 다정이가 하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실 나도 하나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줄 거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나 머위나물이랑 고구마줄기나물 싫어해. 근데 콩나물은 좋아. 

 시금치를 된장에 무친 것도 좋아해”


하나가 이렇게 길게 말을 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눈치 없는 다정이가 큰일을 해냈다.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어! 나도! 나도 콩나물 좋아해.”   

“나도!”  

“나도!”     


나도, 다정이도, 예은이도 콩나물을 좋아한다고 하자, 하나가 웃었다.

우리는 모두 콩나물을 좋아한다! 

오래, 한 백 년 정도 굳게 닫혔던 성의 문이 "삐이그으더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안타깝게도 급식시간이 끝났다는 종소리가 울렸다.

 

다정이도 예은이도 나도 교실로 가기 위해 스탠드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하나는 계속 앉아 있었다. 왠지 쭈뼛거리는 거 같았다. 

이럴 땐 '괜찮아 모둠' 팀장으로서 내가 나서야 한다.


"하나야, 같이 가자!"

"... 그래."


오후엔 수학시간이 있어서 끔찍하지만, 백록담 선생님 덕분에 요즘은 견딜만하다.

하나가 괜찮아진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하나의 그 오오오래된 성문이... 활짝 열리면 좋겠다. 



백록담 선생님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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