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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즐기는 법

요가를 하면서 배운

by 임지원

요가는 어떤 특별한 동작을 무슨무슨 아사나라고 부르며 수련을 통해 그 동작을 완성해 나간다. 간단하게는 허리를 펴고 두 다리를 쭉 뻗고 앉는 동작이 있지만, 어떤 동작은 한쪽 다리를 올려 어깨에 걸고 나머지 한쪽 다리는 쭉 뻗고 두 팔로 바닥을 지탱하며 몸을 번쩍 들어 올리는! 고난도의 동작도 있다. 아주 잠깐일지라도 완성된 이 동작을 보고 나면 인간의 몸이 갖고 있는 무한 가능성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자괴감도 든다. 난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해낼 동작이기 때문이다. 그런 동작들은 아주 많다! 더 놀라운 건 간단한 동작이라고 언급한 두 다리 펴고 앉는 동작, 단다 아나사도 제대로 하려면 쉽지 않다는 거다. 엄지발가락을 앞으로 쭉 밀면서 편다. 발날을 잡아당기고, 다리 안쪽 근육을 꽉 수축하는데 처음 할 땐 다리가 막 덜덜 떨렸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그 자세는 솔직히 쉽지 않다.


요가를 하는 날 아침은 왠지 시험 보러 가는 기분이다. 중요한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몸 컨디션을 계속 살핀다. 무엇보다 많이 먹지 않으려고 한다. 가능하면 요가 시작 한 시간 전에는 식사를 마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시간을 확인하며 초조하지 않으려고 여유 있게 집을 나선다. 수련을 할 땐 호흡에 신경을 쓰면서 선생님의 지시에 맞춰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선생님이 힘을 주라는 곳에 힘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엄지발가락에 힘을 줄 때도 있고 등근육을 아래로 끌어내릴 때도 있다. 바닥을 지탱한 손끝은 움켜잡아 당기듯 힘을 꽉 줘야 한다. 안 그랬다간 손목에 무리가 가서 요가를 한 달 쉬거나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수련을 하면서 알게 된 건 몸에는 힘 줄 곳이 참 많다는 거다. 심지어 혀 끝을 입전청에 붙이고 밀면서 힘을 준다. 안 그랬다간 목을 뒤로 넘기는 동작 중 사레가 들려 켁켁 난리가 난다. 평소에도 긴장되는 순간에는 혀끝을 입전창에 붙여본다. 그리고 힘을 주면 내 머리가 단단히 고정되는 느낌이 들면서 안정감이 찾아온다. 요가에 대해 뭘 좀 아나? 싶게 나불거렸지만, 그럼에도 나의 요가 동작은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내 팔이 조금만 길었다면 손으로 바닥을 안정적으로 받쳤을 텐데... 내 엉덩이가 조금만 가벼웠다면 휙 들어 올릴 수 있었을 텐데... 내 어깨가 조금만 넓었다면 이렇게 까지 불안정하지 않을 텐데... 속이 상한다. 얼마 전 나타난 신입 회원은 오자마자 상체와 하체가 폴더폰 접히듯 딱 붙는다. 유연성이 어마어마했다. 또 어떤 신입회원은 허리에 비해 팔다리가 긴 체형이라 내가 애를 쓰며 만들어가는 동작들을 그냥, 그냥 했다. 그냥 하면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경이로운 모습에 난 부럽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했다. 작은 상체에 거대한 하제를 갖고 태어난 나에게 요가는... 다가가기 어려운데 매력은 넘치는 친구 같다. 이제 좀 알아가나 싶으면 훅 멀어지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포기하면 아주 미미한 성취감을 선물한다. 인간이 이러면 아주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을 텐데! 요가 수련을 통해 얻는 미미한 성취감은 말로 표현을 못할 정도의 꿀맛이라 아직 버티고 있다. 수련의 시간은 고통을 만들고 감내하는 과정이다. 내가 감내한 고통의 크기만큼 내가 누릴 수 있는 환희의 분량이다. 열 번의 나바아사나 일명 보트 자세를 한 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환하다. 다 함께 나무 자세 1분, 좀 길게는 꾸역꾸역 3분을 버틴 우리들의 얼굴엔 동시에 조명이 켜진다. 파운데이션, 쿠션, 기적의 세럼 같은 걸로 만든 물광 속광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얼마 전 김영하의 에세이 [단 한 번의 삶]을 읽었는데 그도 나처럼 요가를 하고 있었다! 요가를 하면서 느낀 여러 생각들도 이 책에 간간히 등장하는 터라 난 아주 친근한 마음으로 재밌게 에세이를 만끽할 수 있었다.

특히 요가 아사나 중 머리서기(시르사아사나)에 대한 언급은 간결하면서도 재미가 있었는데,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머리서기의 순기능이 많이 나온다. 장운동이 활성화되어서 소화가 잘되고, 변비에 효과가 있으면, (믿기 어렵겠지만) 탈모 예방도 된다고 한다. 이런 순기능들은 아직 하나도 모르겠는데, 역기능은 확실히 안다. 머리서기를 하면 그 즉시 못생겨진다. 피가 몰려 얼굴이 벌게지고 일그러진다. 지구를 들고 있는 아틀라스와 비슷한 포즈인데, 심지어 뒤집혀 있는 것이다. 그 상태에선 여간한 미모가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주얼이 된다. [단 한 번의 삶 p68~69]



푸하하! '그 즉시 못생겨진다.'에서 웃음버튼이 제대로 눌린 나는 책을 읽다 말고 한참 동안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댔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가 머리서기 동작을 즐기고 있다는 거다. 부럽다!! 나는 완성하지 못한 그 동작! 더 속상한 건 그가 본격적으로 요가를 시작한 시기가 2022년 6월 코로나시기라는 거다. 나도 그쯤인 거 같은데? 하며 기록(브런치에 올린 글)을 확인하니 난 2023년. 물론 그는 본격적으로 수련을 하기 전에도 간간히 요가를 접했고, 주중엔 매일 요가 수련을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남성은 어깨와 팔에 근력이 있어서 여성보다 머리서기 동작이 수월하다고 들은 터라 부러움도 질투심도 말이 안 되는 건데, 왠지 모르게 그 머리서기 동작에 대한 아쉬움이 불쑥 커져버렸다. 나도 하고 싶어, 그 머리서기 동작. 나도 그 즉시 못생겨지고 싶어!! 이후, 몇 차례의 수련을 통해 고통을 감내하고 또 작은 기쁨을 맛보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달콤한 디저트와 감칠맛 폭발하는 라면을 먹은 날엔 실내 자전거를 돌리며 언젠가는 들어 올려질(!) 나의 하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배꼽을 잡아당겨 배를 홀쭉하게 만들라는 선생님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배가 훅 나올 거 같으면 힘을 내어 잡아당겨보았다. 그렇게 운명의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서기 동작은 수련의 흐름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음은 사바아사나. 죽은 듯 쉬는 것이다. 내 몸의 고통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사바아사나의 쉼이 더 달콤하다. 이것은 마치 인생의 진리 같다. 이 느낌을 간직해야 힘들 때 힘들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거다. 두 손을 깍지를 끼고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킨다. 머리를 바닥에 댄다. 엉덩이를 하늘 높이 올리고 발 끝으로 걸어 깍지 낀 손을 향해 다가온다. 하지만 난 중간에 멈춘다. 뒷근막이 타이트하고 골반뼈가 유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스럽다! 나는 왜 여기서 왜 이런 고통을 자초하고 있나? 그러면서도 또 한 걸음 한 걸음... 난 결국 포기했다. 사바아사나를 하면서 왠지 씁쓸했다. 명상까지 마치고 서로의 평안을 비는 옴샨티 인사까지 했는데. 선생님이 매트를 정리하는 날 멈추게 한다. 나머지 공부를 해야겠다는 거다. 다시 손깍지를 껴서 바닥에 고정한다. 다시 엉덩이를 하늘 향해 뾰죡하게 세운다. 발끝이 손깍지를 향해 다가온다. 좀 더 와서 허리가 엉덩이를 들고 발끝이 들려야 하는데 나는 안 된다. 하지만 선생님은 올만큼 온 상태에서 발을 들라고 했다. 난 한 발을 올렸다. 그리고 나머지 한 발도 올렸다. 다리가 이렇게 가벼웠다고? 선생님이 내려오라고 하셨지만 난 내려가기 싫었다. 흔들흔들 중심을 잡으며 잠깐 더 버텨보았다. 이 성취감, 이 만족감... 무엇과 비교하랴! 드디어 난 '그 즉시 못생겨졌다.' 요가... 이 나쁜 친구, 포기하려는 내 입을 벌려 꿀 한 방울을 혀 끝에 올려준다. 이런 희열 어디에도 없다. 요가에 최적화된 몸을 가진 신입 회원이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요가 몇 개월 했어요?"

"몇 개월요? 저 3년 했어요! 그런데 이거밖에 못한 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희열을 맛보려면 이 정도의 기다림, 고통은 감내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KakaoTalk_20251129_094755531.jpg 2025.11.19 나 혼자 힘으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심은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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