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_ 마지막 이야기

by 임지원


그날 아침을 잊을 수 없다. 밤사이 눈이 내려온 세상이 하얬다.


지난 며칠간 뼈까지 전해지는 찬 기운이 휘몰아쳤다.

매일매일이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목이 부었는지 침이 안 삼켜진다. 물부터 끓일 생각에 전기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버튼을 눌렀다.

물 끓는 소리가 공간까지 데우는 느낌이다.

보일러를 더 올리고 밤 새 틀어둔 가습기에 남은 물을 버리고 간단히 청소를 한 뒤 다시 물을 채웠다.

동주는 아직도 자고 있다. 방학을 한 선주도 늦잠을 잘 것이다.

나는 이미 다 끓어오른 주전자로 가 물을 따랐다.

정수기 찬물을 섞어 마시니 따듯하다. 이제 마른입에 물기가 돈다.

소파에 앉아 창을 바라보며 그 물을 다 마셨다.

잠시 후 남편이 나온다. 정수기로 가 찬물 한잔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집는다.

찬 공기가 훅 거실로 들어온다. 내가 몇 마디 잔소리를 하자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카톡이 하나와 있다. 광고인 걸 알지만 건드렸다.

그런데, 광고가 아니었다. 미현 씨의 카톡이다.


[선영 씨, 나에게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마워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동주를 보면서 현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작은 손, 보드라운 팔, 툭 튀어나온 배, 땀에 젖은 머리카락...

나는 그 시절, 그 귀여운 생명체와 죽을 생각만 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모든 순간을 후회한다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어떤 날에는 현수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문 밖에 내쫓아버렸어요.

밥을 하도 안 먹어서 밥그릇을 뺏어 싱크대에 던져버렸어요.

정말 나쁘게 굴었어요.


갑자기 찾아온 불안감에 그냥 막 나락으로 떨어지려는데

현수가 다가와 안아주는 거예요. 나는 그 아이를 밀어버렸어요.

선영 씨에게 얘기할 수도 없는, 너무나 부끄러운 몇 장면이 지워지지 않아요.

이제라도 현수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너무너무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빨리 현수를 보고 싶어요.


선영 씨 덕분에 가을부터 겨울까지... 행복했어요.


고마워요. 진심으로]


눈물이 쏟아졌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왔다. 파크로열을 향해 달렸다.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가 들린다. 멈추지 않고 달렸다. 걸었다. 다시 달렸다.


파크로열 앞에 경찰차와 119 구급차 한 대가 도착해 있었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 개 이름 카를로... 하루키가 쓴 ‘먼 북소리’에 나오는 이름인데”

“뭐지? 난 기억 안 나요.”

“자기 머릿속을 날아다니는 두 마리 벌한테 조르조와 카를로라고 이름을 붙여줬잖아요.

머릿속, 잡념의 두 이름.”

“그런 걸 다 기억해요? 나도 그 에세이 좋았는데, 그거 읽고 그리스 가보고 싶다고 늘 생각했어요.

여태 못 갔지만.”


“우리한테 그런 시간이 있었네요.”


끝. 하루키를 읽던 여자들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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