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테이블

개와 산책하는 여자 정미현 8.

by 임지원

8.


내가 도착했을 때 현수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선영 씨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울었다.

눈치가 빤한 현수가 할머니를 부르지도 못하고 그림책만 보고 있었다는 부분에서는 거의 오열을 했다.

내 얘기가 끝나자 선영 씨가 나를 안아준다. 이 낯선 여자에게 내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왜 그녀를 선택했나. 어쩌면 놀이터에서 본 그녀의 허름한 유모차를 보며

오피스텔에서 살면서 현수와 함께 했던 순간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선영 씨가 그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러 피렌체 카페에 왔던 날, 나 그 테이블 가까운 데 앉아 있었어요.”

“아... 그날이요?"

"네 그날. 선영 씨 엄청 힘들어하던데..."

"그날 놀이터에서 미현 씨가 커피 주고 갑자기 나한테 이름을 알려줘서 당황했었는데.”

"선영 씨랑 친구 되고 싶어서"


식은 커피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고 선영 씨는 돌아갔다. 동주의 하원 시간을 지켜야 했다.

선영 씨가 돌아가자, 갑자기 허탈한 마음이 든다. 이걸 말한 들 무슨 소용이 있나.

어차피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건 나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 레드포드 교수의 차를 탄 것도 나고,

반항하지 못한 것도 나다. 결국 내가 다 망쳤다. 나의 잘못이다. 견딜 수가 없었다.


수면제를 먹고 다시 깊은 무의식의 상태로 빠져버렸다.



“미현아! 미현아!”


누군가 내 몸을 흔들며 깨운다. 그가 왔다. 그는 여기 오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당신 이제 여기 오지 마.”


그가 운다. 그의 눈물이 코를 타고 흐른다.

예전에도 내 아픔에 진심으로 울어주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 느낌에 공감해 주고,

마음까지 따듯하게 어루만져준 사람. 남편과 살 땐 한 번도 마음을 나눈 적이 없었다.


평생 연구하고 가르치는 선생을 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내가 뭘 해도 공감을 해주기는커녕 늘 평가를 하고

다음엔 이렇게 하라고 대안만 제시했다. 처음엔 그런 가보다 했다 하지만, 계속 살다 보니

그런 남자와 사는 건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이었다. 점점 아무 말도 그에게 하지 않게 됐다.

우리는 서로에게 질문과 대답만 하며 지냈다. 마음이 늘 헛헛했다.

그 당시 나는 우연히 마주친 어떤 이의 차가운 눈빛 같은 것에도 마음이 무너졌다. 일상이 파괴됐다.

전전긍긍했다.

그 느낌을 이야기하면 그는 항상 좋게 생각하라며 신경 쓰지 말라는 말 뿐이었다.

항상 그런 건 다 쓸데없는 일이니 좋은 생각만 하라던 남편.


이제 생각해 보니 그건 일종의 멍청함이고 무신경함이었다.

인간의 유전자는 알았을지 모르지만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쩌면 현수를 보내고 그를 만난 건 하늘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을 상상하는 것도 힘들다. 그런 그가 지금 내 옆에서 울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나는 그를 반드시 보낼 거다.

나는 이제 진심으로 당당해지고 싶다. 더 이상 어떤 벌도 받고 싶지 않다.


“미현아, 잠깐 나가서 밥이라도 먹자.”

“딸 생각해. 딸 사랑하는 거 알아... 힘들었잖아. 지금이라도 돌아가. 나 정말 잘 지낼 수 있어.”


그의 휴대폰이 울린다. 계속 울린다. 그는 밖으로 나갔다. 그가 떠난 자리가 휑하다.



그를 만난 건... 현수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을 때였다.

몬트레이 지역신문에 현수의 사고 소식이 짧게 실렸다. 한국 유학생의 사고사에 대해 다들 관심이 없었다.

현수의 시신을 확인한 나는 병원 복도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학교 관계자라는 50대 백인 남성이 내 곁을 지켜주었다. 호텔을 예약해 주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호텔로 누군가 찾아왔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학교에서 현수의 룸메이트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 나이 남자아이들에게 어떤 느낌을 물어본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현수는 서핑을 좋아했고, 조용한 아이였다고, 우리는 당신의 아이를 괴롭히거나 차별하지 않았고,

어떤 특별한 기억을 만들 만큼 가깝지 않았다고 했다.

현수와 주고받은 톡에도 누가 자신을 괴롭혔다는 얘기는 없다. 바다가 좋고, 여유롭다는 얘기뿐이었다.

바닷가에서 서핑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내준 게 마지막이었다.


현수가 살아날 거라는 믿음으로 카를로와 함께 미국으로 갔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 나는 넋이 나가버렸다. 카를로에 대한 기억도

갑자기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역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취재를 온 한국 특파원 기자가

LA한인협회에 연락해 카를로를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거다.

카를로를 찾아야 했다. 그 기자에게 연락을 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는 나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 걱정하며 내 곁을 지켜주었다. 나는 어떤 것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는 다 알고 있는 듯했다.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와 카를로와 함께 현수가 좋아한 바닷가 해변을 걸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바다는 본 적이 없었다.

곳곳에서 현수와 같은 아이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그 해변 보이는 곳에 멋진 저택들이 여러 채 서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나무로 지은 2층짜리 건물이 서너 채가 서 있었는데,

거기 한 2층에 작은 집을 계약했다. 거기서 그와 카를로와 함께 1년을 살았다.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 내 인생을 그곳에 두었다.

1년쯤 지나자 그는 나에게 함께 돌아가자고 했고,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와 파크로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어쩌면 예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유부남이었다. 그리고 어제 그의 딸이 카를로를 죽게 했다.


벌을 받은 거다. 그렇다 나는 벌을 받았다.

어쩌면... 벌 받을 일이 더 남아 있다.


남편이 죽기 한 달 전 즈음...

오피스텔로 찾아와 교수님의 아이를 낙태했다고 말한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햇살 요양원 B동 302호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1인실인 302호 문을 열자

테이블에 남편의 전 부인과 선배, 그리고 어린 학생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선배가 일어나 나를 반겼다.


"오랜만이다.. 와줘서 고마워."

"선배... 잘 지내셨어요?"

"응... 난 미국에서 공부했어. 사모님이 도와주셨어..."

"아... 사모님, 안녕하세요. "


꽤나 늙어버렸지만 여전히 눈빛이 매서운 분이었다. 나는 그녀를 한번 봤다.


"너도.. 이제 꽤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구나... 잘 지내고 있니?"

"그럭저럭... "

"너의 어머니는 잘 계시고?"

"네..."

"정말 굉장하신 분이다.. 너의 어머니..."


우리 넷은 동그란 테이블에 다 같이 앉았다.

마실 것 하나 없이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눈치만 보던 여학생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이가 왜 여기 앉아 있는지 알 거 같았다.


"우리가.. 없애자 악마를..."


선배는 테이블에 약병 하나를 올려놨다. 나는 그 약병을 가방에 넣고 병실을 나왔다.


남편이 야간산행을 떠나던 날,

텀블러에 차를 담으며 약병에 담긴 알약 하나를 같이 넣었다.


그렇다. 나는... 벌 받을 게 아직 남아 있다.

수면제가 어디 있더라. 아까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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