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개와 산책하는 여자 정미현 7.

by 임지원

7.


엄마는 나의 출산도 의대 공부를 그만둔 것도 인정하지 못하셨다.


엄마의 화는 도무지 꺼질 줄 몰랐다. 그 교수를 향한 분노가 엄마의 살을 태우고 있었다.

내가 출산을 한 다음 날 엄마는 병원으로 오지 않았다.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날 엄마가 교수의 연구실로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 교수는 이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오피스텔에서 현수를 키우는 동안 교수의 연구실로, 집으로, 교수 아내가 다니는 교회까지 찾아가

어미의 분노를 폭발했다. 교수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셈이 됐다.


내가 임신한 것을 안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엄마였다.

나는 엄마를 실망시켰다. 엄마처럼 살지 말라며 상에 숟가락 놓는 일도 시키지 않던 엄마였다.

아빠의 폭력과 행패를 조용히 견디며 나를 지켰다.


현수가 돌이 지났을 땐 가 어느 새벽에 엄마가 갑자기 오피스텔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내 등을 때리며 엉엉 우시는 거다. 자다 깬 현수는 놀라 자지러졌다.

엄마는 애간장이 끊어질 듯 한 통곡을 멈추지 못했다. 당신의 가슴도 때렸다. 나도 울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고, 엄마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119까지 출동해 오피스텔이 발칵 뒤집혔다.

엄마가 오면 나는 죄인이 되고 현수는 일종의 가해자처럼 취급을 받았다.

현수는 엄마를 할머니라 부른 적도 없었다. 몇 번 오지도 않았지만 와도 현수를 안아주거나,

보고 웃는 일은 절대 없었다.


현수가 다섯 살 됐을 때 그날은 웬일로 엄마가 단팥빵을 사 가지고 오셨다.

현수는 이제 눈치가 빤해져 까불지도 않고 가만히 한쪽에 앉아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밀린 빨래를 돌려주시고, 엉망 인 부엌을 치우고, 쓰레기들을 모아 내 가고, 묵은 살림까지 정리했다.


엄마는 한숨 돌리며 작은 식탁에 앉았다. 나는 믹스커피를 한 잔과 단팥빵을 접시에 담아 놓아 드렸다.

엄마는 커피만 드시며 한쪽에 앉아 그림책을 보고 있는 현수를 바라봤다.


“현수야, 할머니 해봐.”


그림책을 보던 현수는 깜짝 놀라더니 무서운 듯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괜찮아 현수야, 할머니 해봐. 엄마의 엄마니까 할머니.”


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끝내 할머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후, 교수가 찾아왔다. 이제 이혼을 했고, 나와 현수 곁에 있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오피스텔을 정리했다.



“현수야 다 정리하고 유학... 갈까?”

“...”


현수의 결심이 확실하게 서자 생각보다 진행이 순조로웠다.

남편의 장례 이후 유산 문제 등을 맡아준 변호사가 유학원을 추천해 줬다.

그 유학원에서 추천한 학교는 몬터레이에 있는 몬터레이 베이 보딩 스쿨.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2시간을 달리면 나오는 그림 같은 해변 근처에 학교가 있다.

너무 가깝지 않고 적당히 떨어진 한인 타운과의 거리와 자연친화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해변에 가득한 노을과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아이들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해변에 늘어선 멋진 주택들을 보며 그곳에서 현수와 카를로와 함께 사는 꿈을 꿨다.

비용이 어마어마했지만, 현수가 받은 몫이 있다.


나는 당장은 함께 가지 않기로 했다. 책임 질 일이 있고, 이곳에서의 삶도 정리해야 했다.

곧 시작되는 가을 학기에 맞추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현수가 미국으로 떠났다.


현수를 보내고, 서둘러 정리를 했지만, 그래도 6개월이나 걸렸다.

카를로도 함께 가야 했기에 준비할 서류가 더 많았다.

곧 현수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들떠있던 그때,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당신의 아이는 현재 아주 위중한 상태다.

서핑 수업 중 갑자기 밀려온 큰 파도에 휩쓸렸다.

아이를 구조해 병원으로 급히 이송했고, 현재 치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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