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여행은 동유럽으로 정했다. 혼자!
2018년 10월쯤부터 퇴사를 계획했다. 그리고 2019년 8월에 실천했다. 입사할 때 '2년 정도 다니고 퇴사하면 한 달 동안 유럽 가야지.' 했는데, 내일의 내 생각도 모르는데 섣부르게 2년 후의 나를 단정 지었다니. 2년을 다니지도 않았고, 한 달 유럽 경비도 못 모았다. 퇴사하기 두 달전쯤, 친구와 속초로 여행을 갔다. 칠성 조선소라는 카페에 앉아서 친구에게
"나 이 주 동안 제주도에 가 있으려고" 하니까,
"해외를 가! 너 만약에 해외 가면 어디 가고 싶은데?" 했다.
"음... 프라하?"
해외를 가보지 않았기에 유럽은 더욱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때 막연하게 프라하의 붉은색 지붕들이 떠올랐다.
친구는 "가! 동유럽은 물가가 진짜 싸." 라면서 스카이 스캐너로 내가 탈 비행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날 유럽으로 보내고 싶어 하던 그 친구는 유럽에 한 달씩 두 번 갔다 온 적이 있는 친구였다.
그렇지만 가까운 일본조차 가본 적이 없었다.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야, 그런데 나 해외여행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데?" 물으니,
"다 사람 사는데야. 괜찮아. 너 왜 이렇게 프라하로 보내고 싶지"
아, 그렇구나. 다 사람 사는데라니. 그래 그럼 갈 수 있겠다! 나는 흔쾌히(?) 친구 말을 받아들였고, 그날 이후 내 여행 목적지는 제주도가 아닌 프라하가 됐다.
퇴사 후 내 여행지는 '동유럽'으로 잠정적으로 정해졌던 속초의 '칠성 조선소'
그렇지만 유럽행 티켓을 쉽게 끊을 수 없었다. 그나마 믿고 있던 퇴직금이 두 달 뒤에 들어온다는 것이 아닌가? 퇴사할 때 고가의 노트북까지 구입해버린 탓에 여분의 돈도 없는 상태였다. 회사 다닐 때 돈을 열심히 모으지도 않았지만 가진 돈 이외에는 쓰지 않겠다는 개떡(?) 같은 철학 탓에 신용카드는 절대 안 만들었다. 그렇다고 백수가 될 예정인데 신용카드를 만드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할부의 유혹을 뿌리치지 없을 것 같았다.
비행기 표값만 있었고 나머지 경비가 해결되지 않아 주변 지인들에게 '유럽 갈 생각이 있다'는 말만 몇 번씩 되풀이하고 있던 때가 있었다. 차마 엄마에게 '엄마, 나 유럽 가게 백만 원만' 할 수가 없어서 그것마저 최대한 뒤로 미루고 있었다. 물론 퇴직금이 들어오면 바로 갚을 수 있는 돈이었지만 액수에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여행 경비'를 명목으로 돈을 빌리는 일이 쉬운 게 아니었다. 그때 친한 동기 언니를 만나서 퇴사 이후의 근황을 전하며 자연스럽게 내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언니는,
"수현아. 네가 유럽이 가고 싶으면 언니가 빌려줄게."
"어?"
"언니가 지금 그 정도는 빌려줄 여유가 있으니까, 엄마한테 얘기해보고 어렵다고 하시면 말해. 진짜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해."
평소 언니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빈말 일리 없었다. 이런 이야기는 아주 상투적이겠지만,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동생을 위해 흔쾌히 여행 경비를 빌려주겠다는 언니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그때 엄마의 상황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결국 언니에게 돈을 빌렸고, 무사히 숙소를 예약하고 환전을 마칠 수 있었다.
10월 10일, 떠나는 날은 금방 다가왔다. 아침 여섯 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다른 나라로의 여행도, 비행기 환승도, 출국 심사도, 모든 것이 낯설었기 때문에 '환승 처음'이나 '해외여행 처음'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며 나랑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의 고민을 참고했다. 역시 세상은 넓고 나 같은 사람은 많았다. 이미 난처한 상황에 불안해하며 이것저것 알아본 사람들 천지였다. 여러 번 읽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온몸에 긴장의 기운을 가득 담은 채로 무사히 출국 심사를 마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첫 번째 비행기를 기다렸다.
도쿄를 경유해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하는 루트였다. 전날 두 시간 정도밖에 못 잔 상태였다. 평소 안구 건조증에 시달리고 있어서 눈에 추를 단 듯 무거웠다. 그렇지만 피곤한지도 모른 채로 비행기에서 주는 간단한 조식을 먹고 도쿄에 내렸다. 긴장했던 환승 구간은 의외로 '환승'이라고 쉽게 쓰여 있었고, 다소 조용하고 딱딱한 분위기였지만 보안 검색대도 통과했다. 나리타 공항 게이트에서 오스트리아 항공 비행기를 기다렸다. 커피를 한 잔 더 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해외로 나왔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우리나라 국경을 넘어가면서 핸드폰도 자동으로 로밍이 돼버린 뒤였지만 동양인이 많아서인지, 그냥 내 몸이 경직돼 있어서인지 어쩐지 실감이 안 났다. 그러나 그 기분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비행기를 갈아타자 어떤 한국어도 들리지 않았다. 기내에 동양인은 나를 포함해서 두 명이었다. 옆에 앉은 여자 서양인이 나를 보고 웃으며 'hello' 하는 것을 보고 어설프게 화답하는 나를 보고는 한국을 떠나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우리나라보다 여덟 시간이나 느린 나라로 가기 위한 여정은 길고 길었다. 자막 없는 영화를 보면서 내용을 얼기설기 이해하는 것도 지칠 무렵이었다. 나리타 공항에서 다운로드해놨던 음악을 틀었다. 첫곡은 아이유의 <가을 아침>이었다. 어쩌다 플레이 리스트에 저장된 노래였는데, 어쩌다 다운로드가 되어 가장 특별한 공간에서 재생된 노래였다.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던 공간에서 타인의 한국어를 아이유에게서 듣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쓰는 언어도 다르고 외형도 다른 승객들이 가득한 곳에서, '산책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가 하나 가득'이라는 가사를 가진, 말도 안 되게 한국적인 노래를 듣고 있으니 그 이질감이 생전 느껴보지 못 한 정도였는데, 그게 마치 앞으로의 나의 여행이 행복할 거라는 신호 같았다. 물론 그때 유심을 갈아 끼웠다면 숙소에 한 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할 일은 없었겠지만 분명히 그때 잔뜩 설렜다. 안 자도 마냥 행복한 첫 해외여행 시작, 첫 동유럽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