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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작가 Dec 06. 2019

진정한 이방인이 되는 기분

회사 안 가고 동유럽 가기-2

 빈에서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 야경을 보기 위해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의 해는 금세 저 버리면서 막상 기다리면 하염없이 하늘에 걸려있다. 커피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카페 <자허>나 <센트럴>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에 제외해버리고 그냥 내 위치에서 가까운 카페를 검색했다. 여러 개가 나왔지만 그중 구글 후기가 가장 좋은 곳으로 향했다. 카페 <museum>이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북적였다. 여행 와서 뭔가를 먹으러 가게 안으로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이상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말해야 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 서버가 자리를 안내해줬다. 혼자라서 그런지 정말 한 명이 앉을 수 있는 협소한 자리로 안내해줬다. 서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카운터와 주방과 아주 가깝고 마주 보는 자리였다. 불편했지만 '혹시 다른 자리에 앉을 수 있나요?'를 말할 수가 없어서 그냥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사실 파파고를 이용하면 대충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대화를 할 자신이 없었다) 메뉴판을 한참을 둘러보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취향의 아주 단 커피를 주문했다. 



평소 취향은 아니었지만 맛있었다.


유럽이 우리나라와 달라 조금 불편했던 점을 꼽으라면 물을 그냥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딜 가나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는 게 당연한 곳에서 한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는 꽤 어려운 문화였다. 너무 달달한 걸 먹고 있던 차라 목이 말랐다. 커피와 함께 줬던 물 한 잔은 이미 다 마신 지 오래였다. 사실 커피를 주문할 때 물을 먼저 부탁했었는데, '커피와 같이 줄게'라는 답을 들었다. 그러니까, 서버는 내가 목이 꽤 마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찾아봤을 때 수돗물(tap water)은 무료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마셔도 되는 물인 건지 아닌지 감이 안 왔다. '에이, 그냥 주문하자'는 마음에 어지러운 메뉴판을 한참을 정독한 끝에 서버를 불렀다. 약간 허둥대는 느낌으로 물을 가리키며 “this one, please”라고 하자 서버는 살짝 미소 지으며, '그냥 갖다 줄게'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음, 솔직히 100% 정확한 해석은 아니지만 물을 새로 갖다 줬으니 그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무언가 비언어적인 행동에서 느껴지는 친절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건 몸이 움츠러든 내가 느꼈던 다분히 주관적인 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사람이 말을 하고 있을 때의 분위기와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서버에게 'thank you'라 하자, 기분 좋은 'you're welcome'이 돌아왔다.


비엔나에서의 좋은 기억을 만들어준 카페 뮤지엄.



 휘핑크림이 가득 올라간 커피를 마시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와 카톡을 하며,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피아노 연주하는 남자가 있었고, 연주가 끝나면 박수를 쳤고, 커피를 마시고,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한주의 끝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 속에서 나도 비엔나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카페가 아니어서 그런지 동양인이 없었다. 어딘가 몸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나 정말 이방인이구나’라는 게 온몸을 타고 왔다. 이따금씩 뮤지엄에 들어오는 손님이 약간 희한한(?) 방향으로 앉아있는 날 쳐다보기는 했지만 그 시선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들을 영화 보는 것처럼 바라보둣, 잠시 눈길을 준 사람들도 '여행 왔나 보네' 하는 눈빛이었던 것 같다. 이방인이 된 기분이 묘하면서도 싫지 않은 것이, 이 감정이 오랫동안 유럽을 그립게 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 밖이 푸르스름해졌을 때쯤 뮤지엄을 나와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다. 적당히 차가워진 공기가 몸을 감쌌다. 해는 저물어 있었다. 커피의 달달함과 쌉싸름함이 몸의 체온을 유지해줬다. 오페라하우스의 야경을 보려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찾은 카페에서 좋은 기억을 얻었다. 여행은 그런 것 같다. 그곳에 있는 모든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장소나 낯선 누군가와의 순간이 그 도시 전체의 기억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제든 그 도시를 다시 가고 싶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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