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안 가고 동유럽 가기-3
카페 뮤지엄과 오페라하우스는 가까웠다. 야경이 유명한 명소답게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비엔나를 음악의 도시라고 하는 이유를 이 건물 전체가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오페라 하우스의 건너편 건물 위로 올라가면 사진 속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인스타에 올라오는 인생 샷을 찍기 위해 열일하고 있는 한국인이 많았다. 어딜 가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존재감이 강하다. 누군가와 같이 있었으면 분명 사진을 남겼겠지만, 누구한테 찍어달라고 부탁할 만큼의 욕심은 또 없어서 혼자 멍하니 오페라 하우스의 광채를 한껏 느꼈다. 그냥 들어가기는 아쉬워서 케른트너 거리로 향했다. 한번 와본 곳이라고, 구글 지도에 머리를 박고 있을 때와는 다른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멜론을 켰다.
흐르는 곡은 cigarettes after sex - K. 였다. 한국에 돌아온 지 두 달이 다 돼가는 지금, '유럽 여행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라고 물었을 때 나오는 몇 가지 중 한 가지는 이때다. K. 를 들으면서 케른트너 거리를 걸을 때.
조금 추운 날씨지만 테라스에 놓여있는 난로에 의지해서 체온을 유지하며 따뜻한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적당히 소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사운드를 채우고, 네온 빛이 수놓은 아름다운 거리를 분주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가득한 비엔나 풍경 위에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 천천히 선명해지는, 그 사이로 주인공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그런 영화 안에 내가 녹아든 기분이었다.
지금도 <K.>만 들으면 케른트너 거리에 있는 것 같다. 그 마법 같은 순간이 선명해진다.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많은 탓에 채도가 낮은 풍경을 지녔지만 공기는 이상하리만큼 활기가 들어찼다. 그 공기가 숙소로 돌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았다. 해가 진 유럽에서 혼자서는 더욱 할 게 없었다. 그런데도 근처를 서성였다. 아마도 K. 가 준 여운 때문이었으리라. 그저 낮에 걸었던 거리를 걷고 또 걸었던 것뿐이었지만 유럽의 낭만을 한껏 즐겼던 밤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없던 비엔나의 첫날밤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