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 시간, 빵집 옆을 지나가면 풍겨오는 달콤한 빵 굽는 냄새에는 없었던 식욕이 동한다. 10분만 일찍 일어났더라면 갓 구운 빵에 커피 한 모금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 시간이 촉박해 서두르는 발걸음마저도 빵집 앞에서 잡혀 버렸던 날에는, 곧 바뀔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갓 나온 빵 하나를 사곤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이미 그 온도에 축축해질 빵인데, 갓 구운 빵의 매력이 뭐 길래 이리도 목을 매는지.
주 중 내내 근면 성실했던 몸은, 알람 없는 주말에도 하루를 일찍 시작하곤 한다. 손 가는대로 리모컨 번호를 눌러대며 반쯤 잠든 듯 텔레비전을 보며 피식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주말 아침 시간을 가장 주말답게 보내는 것은 역시 빵집 가기.
주말 빵집은 세수는커녕 ‘외출복’이라는 커트라인을 간신히 넘긴 옷을 대충 주워 입고서는 슬리퍼를 신고 가야 제 맛. 발이 추워 까만 앵글부츠를 신었던 어떤 날에는 룸메이트 녀석이 후줄근함의 밸런스가 맞질 않다고 했던가. 오호, 친애하는 웹툰 작가님의 옳으신 말씀이로다.
주말 아침 빵집에서 구매할 빵은 개인 취향과는 관계가 없다. 고려되어야 될 단 한 가지 조건은 ‘갓 구운 빵’. 혹자는 빵이 가장 맛있을 때는 갓 나올 때가 아니라, 나온 지 몇 시간 뒤라 한다. 그러나 몇 시간 뒤나 하루 뒤나 그 빵이 그 빵맛인 무딘 입맛은 누가 뭐래도 갓 구운 빵이 최고라 주장한다.
빵 집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신경이 후각에만 작용하는 듯 정신이 혼미해진다. 눈에 보이는 빵을 다 사지 않으려고 정신을 단단히 붙든다. 이미 그랬다가 막상 먹으면서 후회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조합도 맞지 않고 많기만 빵을 다 먹어야 된다는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주말 빵집에서 구매한 빵의 메리트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만다.
카운터 옆, 갓 나온 뜨끈한 빵들은 아직 진열대까지 가지 못하고 열기를 식히고 대기 중이다. 초딩 입맛이라 평소라면 결코 사먹을 일 없는 말간 얼굴의 빵이 이번 주말의 빵으로 간택된다. 저기, 저 빵 주실 수 있으세요? 네임태그 없는 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빵 맛을 방해하지 않는 커피 선택은 주요하다.
빵집에서 앉아서 먹어도 될 일이지만 굳이 테이크아웃을 해서 집까지 가져가는 이유, 빵을 찬미하는 신성한 의식을 눈치 볼일 없이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빵이 눅눅해지지 않게 빵 봉지를 열고 간다. 그렇지만 그 열기를 잃지 않도록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긴다. 집으로 도착하자마자 자리를 잡고 빵을 한 입. 흐음. 저절로 감기는 눈. 맛있다, 맛있어. 두꺼운 빵은 아직까지 속이 뜨끈해 후- 불어가며 먹는다.
미국에도 빵집은 있다. 큰 마트 어딜 가더라도 한 편에 마련된 베이커리 코너에는 쿠키, 도넛부터 파이와 케이크까지. 웬만한 빵들은 구매가 가능하고 맛도 좋다. 단 음식을 즐기는 나라답게 디저트류는 얄짤 없이 달고 맛있다. 초콜릿 케이크는 입안에서 사라져 마음을 녹인다. 투박하게 생겨 별 기대 없이 깨문 쿠키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있다. 이거 뭐냐, 찬찬히 쳐다보게 만드는 부드러움과 달콤함.
천원마트에서 산 천 원 짜리 쿠키마저도 꽤 많은 양에 ‘고급 쿠키’ 맛이 난다. 그럼에도 드는, 저자본으로 확실한 맛을 보장하는 베이커리 프로세스에 대한 상상. 이 가격에 이 맛을 보장하기 위해서 사용된 재료들은 도대체 뭘까. 한 입 한 입 치고 들어오는 내 몸에 대한 죄책감.
물론 미국에도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빵만 전문적으로 파는 베이커리가 있다. 다만, 아직까지 그런 빵집을 직접 발견하지 못했을 뿐. 그만큼 희귀하다. 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봐도 그런 빵집은 굉장히 보기 드물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클래식 빵집’이라나 뭐라나. 베이커리 비슷한 곳을 발견하더라도 베이커리라 하기에는 커피나 식사 위주고, 적은 빵 종류에 완성된 제품을 대량으로 공급받아 진열한 느낌. 갓 구운 달콤하고 뜨끈한 빵과는 거리가 멀다. 방금 문을 연 빵집이 주는 신선함과 설렘이 없다.
그 대신 마트에서 판매되는 쿠키나 브라우니, 파이, 케이크 등 베이커리 키트들이 만들기 쉽고 간편하게 나와 있다. 오븐 활용이 일반적인 미국 가정에서는 빵을 사러 빵집까지 가기보다 집에서 직접 만드는 편이 더 편리하면서도 신선한 베이커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일지도.
베이커리에 관심이 전혀 없더라도 마트에 쭉 진열된 베이커리 키트와 가격을 보면, 해볼 만 한데, 도전의식이 생긴다. 베이커리 키트들은 실패하더라도 아깝지 않은 가격이다. 만드는 과정도 굉장히 간편하다. 따로 계량을 하거나, 추가해야 될 재료들을 살 필요가 없다. 그저 키트에 들어있는 대로 섞고 반죽하여 오븐에 구우면 완성되는 매직 키트.
베이커리 반죽을 오븐에 굽기 시작하면 얼마지 않아 집안 가득 달콤한 향기가 퍼져 나간다. ‘진짜로 갓 구운 빵’이 오븐에서 어른어른 열기를 뿜어내며 모습을 드러낸다. 겉은 크리스피, 속은 촉촉한 초코브라우니가 주는 신선함과 부드러움은 처음 경험해본 맛의 영역.
오븐의 후끈한 열기와 함께 퍼져나가는 달콤한 향기는 주말 아침 빵집의 설렘을 소환한다. 그렇지만 오븐에서 갓 나온 쿠키와 브라우니, 머핀들도 그리운 ‘그 빵집’에 대한 행복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저 다른 모양의 다른 행복.
미국에는 빵집이 있는가? 그래서 미국에는 빵집이 없다,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