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과 콩나물, 자급자족의 미국 먹생활

by 그린숲

한국에서는 흔하디흔하고 저렴한 채소 깻잎과 콩나물. 내가 깻잎과 콩나물을 ‘좋아하는’ 채소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었던가. 미국에 와서야 최고로 애정하는 채소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미국의 일반적인 마트에서는 깻잎을 구매할 수가 없다. 한국마트나 인터내셔널마트나 가야 깻잎을 살 수 있어, 깻잎을 본 날에는 이때다 싶어서 깻잎을 한 아름 구매하곤 한다. 콩나물은 간혹 판매하고 있는 마트가 있긴 하지만,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도 사야지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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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만 있었더라면.


오이를 썰고, 양배추를 썰고, 당근을 썰어서 고추장 양념에 맛깔나게 비빈 메밀면 위에 가지런히 올린다. 고소한 참기름에 통깨까지. 아, 아쉽다, 아쉬워. 깻잎만 있으면 참 좋겠다.


넉넉히 두른 참기름에 김치와 참치를 달달 볶아, 꼬들꼬들한 흰 쌀밥을 함께 달달 볶아주고 김가루까지 뿌려준다. 여기 깻잎을 채 썰어 올리면 얼마나 향긋할까.


KakaoTalk_20180812_231026022.jpg 정말 깻잎만 있었더라면.


노릇노릇 구운 돼지고기에 상추에 양배추를 깨끗하게 씻어서 준비한다. 된장에 매운 고추와 마늘을 다져 넣고, 참기름과 통깨로 풍미를 더해 쌈장을 만든다. 정말 깻잎만 있었더라면.


홍합과 오징어, 새우를 넣은 부침반죽에 고추를 다져 넣고, 양파 썰어 넣는다. 채 썬 당근으로 색을 더해도 아쉬운 하나, 깻잎, 아 깻잎이여. 깻잎김치 이야기는 침이 돌아서 못하겠다.


깻잎과 함께 콩나물에 대한 사랑도 깊어만 간다.


시원한 콩나물국은 말해서 뭘 하나. 실패 없는 해물맛 조미료를 푼 말간 물에, 매운 고추를 넣어 알싸한 매운맛을 우려내고, 마늘을 다져 넣은 콩나물 국은 과음한 다음 날, 먹고 싶다 못해 절실하다. 콩나물 해장국 대신 끓여 본 김칫국에도 콩나물의 빈자리가 크긴 매 한가지.


KakaoTalk_20180812_200052839.jpg 콩나물이 아쉬운 비빔밥.

고소한 참기름 풍미 뽐내며 아삭아삭 씹는 맛이 좋은 콩나물무침은 비빔밥을 만들 때마다 아쉽다. 시금치나물에 버섯과 양파 볶음, 채 썬 양상추, 계란까지 올렸지만, 콩나물이 빠진 비빔밥이라.


얼큰한 매운탕과 매콤한 해물찜이 갖출 것 다 갖추었다고 우겨본들 무슨 소용이랴. 콩나물이 빠졌는데.




이렇게 깻잎과 콩나물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름시름 앓은 지난 몇 년의 미국에서의 시간,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깻잎과 콩나물 자급자족의 생활에 들어갔다. 먹고 싶으면 내가 키운다! 한국에 들어갔을 때 공수해 온 깻잎씨와 한국마트에서 주문한 콩나물 콩으로 자급자족의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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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수확의 기쁨.


티끌만한 까만 깻잎씨, 이 작은 씨앗에서 깻잎이 나온단 말이지. 올봄, 한껏 키워서 마음 내키는 대로 먹어보자는 심산으로 큰 화분 두 개에 욕심대로 깻잎씨를 심었다. 기대에 부응하듯 쉽게 새싹을 틔워준 깻잎은 본 잎이 나서부터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그 깻잎’의 모양새가 갖춰가기 시작할 쯤부터는 조바심이 난다. 요리를 할 때마다, 아니야, 아니야, 좀 기다리자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눈을 딱 감고 몇 주가 흐르자, 깻잎 화분 주변은 밤낮 깻잎 향을 풍기며 때가 왔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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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을 키워서 마음껏 먹는다.


톡톡, 깻잎을 따서 상상만 했던 요리에 마음껏 깻잎을 올려 먹었다. 저절로 감기는 눈. 그래, 이거지! 미완성이었던 요리들이 깻잎과 함께 완성이 된다.


콩나물 키우기의 좋은 점은 생장주기가 짧아서 자주, 많이 먹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콩나물 콩을 이틀 정도 불려 싹이 나면, 까만 천을 덮어 놓고 생각날 때마다 물을 흠뻑 주면 되는데, 볼 때마다 쑥쑥 크는 게 느껴질 정도로 빨리 자란다. 그렇게 5일 정도만 물주기에 신경을 쓰면 수확을 해서 먹을 수가 있다.


옛날 드라마에서 할머니들이 방 한 편에서 콩나물을 키우는 장면을 보며, 저게 진짜 가능한가 했던 호기심을 풀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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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쑥자라는 콩나물.


검은 천을 열어 때가 되면 빼꼼 빼꼼 길게 목을 뺀 콩나물에 물을 붓는 나의 행위가 왠지 모르게 성스럽게 느껴지는 이 기분은 어디서 온 것일까. 직접 먹는 것에 이토록 공을 들이는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일까. 별일 아닌 것에 경건해지는 이 마음이 겸연쩍다.


집에서 키우는 콩나물은 굵기 얇다. 물을 띄엄띄엄 주게 되면 콩나물에 잔뿌리가 많이 생기기도 한다. 먹기 위해 집에서 콩나물을 키우는 행동력, 이쯤 되면 모양새는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저 쑥쑥 자라만 다오.


냉장고에 방치되어 무른 콩나물을 볼 일은 없다. 그날 자란 콩나물을 그날 한 줌 뽑아서 먹는다. 사는 것과는 달리 여리해도 콩나물은 콩나물이구나. 국물에 시원한 맛을 내고, 아삭아삭 식감으로 입맛을 돋우는 제 할 일을 톡톡히 해낸다.


아쉬운 놈이 우물을 판다고, 우물 한 번 제대로 파고 있는 자급자족의 미국 먹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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