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숲 Aug 22. 2018

꿈과 현실 사이, 미국살이 프리랜서 이야기


나의 진짜 이야기를 풀어쓰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행여 나의 글 사이에 눅눅한 이끼처럼 꺼림칙한 본심이 숨어있진 않을지, 그 본심을 마주하게 될 나는 괜찮을지. 당신은 괜찮을지. 혹시 나는 이끼가 낀 무른 땅 위에 세운 나의 이야기를 반듯하게 꾸미고 있지는 않은지.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 무슨 죄가 되려나만은, 그 이야기들이 내 속을 파먹는 일이 되어 버릴 때만큼 처참한 것도 없다. 나도 몰래 파먹은 구멍 난 속을 메우는 일은 괴로운 시간과 노력이 든다.

서른 중반의 나, 나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 만큼 나의 땅은 견고한가.


단단한 평지일리 만무하고, 그럴듯한 동산일리도 없다. 안개 자욱하고 신비로운 숲 속을 동경하지만, 습한 공기와 벌레들, 외로운 시간들을 견딜 깜냥은 안 된다. 고독한 늪에 서서히, 그러나 무섭게 빨려드는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애초부터 나의 땅은 임기응변의 땅이다. 이정표가 있는 친절한 길은 재미없다하여 샛길로 빠졌다만, 샛길도 걷다보니 외롭다하여 아스팔트로 나와 보았다. 쌩쌩 잘 나가는 스펙들 사이, 그나마 굴러 가는 스펙을 겨우 타고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내가 가진 스펙에 남들 몰래 그럴듯한 페인트칠을 했던 날에는, 남들 다하는 그 고민.


내 모습 그대로 완전할 수는 없는가.


몰래 칠했던 두꺼운 페인트를 벗겨내니 오히려 후련하다. 그래도 보잘 것 없는 민낯을 내놓는 일은 흔하지 않다. 별 것도 없는데 내 놔서 무엇 하랴, 보는 이도 없을뿐더러 자기만족이다. 그저 내 안의 것이 떳떳하면 될 일이다.


이쯤 되면 아스팔트에서 달리기에는 너무 느린 속도, 뒤에서 경적이 울려댄다. 빨리 가던지, 옆으로 빠지던지. 아, 어쩌지, 멈추고 싶은 건 아닌데. 사고가 나기 직전 드는 생각, 아스팔트 대신 오프로드는 안 될까. 흙먼지는 또 싫으니, 숲 속의 길을 걸어가 볼까. 숲 속의 삶을 동경했던 나, 숲길을 걷는 것 정도는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가는 숲속의 길.


숲 속 길, 내 다리를 대신할 것은 더 이상 없다. 매일 지치지 않게 걸을 수 있도록 컨디션을 조절한다. 쉼터가 나오기까지의 물과 식량이 부족하다 싶으면 몇 끼 굶기도 한다. 외롭다. 그렇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컴컴한 밤은 어디에서나 늘 그렇듯 최악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몰고 와, 불안과 혼돈 속에 나를 빠뜨리지만, 내일의 아침은 분명히 긍정의 마음으로 깨리라는 것을 믿고 눈을 질끈 감는다.




이렇게 프리랜서의 삶은 시작됐다. 참, 그럴 듯 해 보이는 단어 프리랜서(freelancer). 문득 단어의 사전 뜻이 궁금해진다.


프리랜서:

일정한 소속이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

비전속, 비전속인, 자유 계약자, 자유 기고가, 자유 활동가로 순화.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계약직이다. 소속이 없기에 든든한 소속감 또한 없다. 소속감이 든든한 기분이라고 알게 된 것은, 내 삶이 프리랜서로 바뀌고 부터다. 나를 지켜줄 것은 나 하나, 평가되는 것은 오로지 내 능력, 신뢰를 얻기 위한 속임수 없는 성실함.


게으름과의 지루한 싸움이 괴롭다.


그렇다하더라도 여전히, 내 프리랜서의 삶 속에는 천성처럼 게으름이 있다. 다만 그것들이 가져오는 결과가 예상치를 넘어서는 혹독함이라는 것. 이 혹독함 속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1순위로 떠오른다. 정규직과 프리랜서, 무엇이 더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풍요로운가, 전자의 삶이라고, 고민 없이 답한다.


프리랜서 4년차, 실수와 게으름의 결과가 가차 없다는 것은 뼈저리게 받아들였다. 아무도 보지 않기에,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성실함을 키워가는 일은 가장 힘든 부분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했더라도, 하루아침에 주어졌던 일이 없어지기도 한다.


고용주는 얼굴 자주 볼일 없는 계약직 프리랜서에게 냉정하다. 냉정하게, 나 같아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프리랜서에게 내려진 해고통보에는 자책과 원망의 골이 깊고, 눈물마저 쓰디쓰다.


미국살이 프리랜서의 삶, 한국에서와는 또 다르다. 일을 의뢰받는 기회는 한국에서보다 적고, 신뢰를 얻는 것도 두 배는 더 힘이 든다.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누가 너더러 그렇게 살라고 했더냐, 우회적인 핀잔이 돌아온다. 세상에 본적도 없는 크기의 책임감은 매섭게 나를 짓누른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미안함에 대한 숙고는 아직 다 끝내지 못했을 정도로 무겁다.



매일매일 자체 출·퇴근을 한다.


시간 운용이 자유로운 만큼, 그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도 스스로 정한다. 출·퇴근시간이 없기 때문에 자체 출근과 퇴근, 야근의 시간을 정한다. 알람은 매일 같은 시간에 울리도록 한다. 운동시간도 정해, 매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몸이 약해지지 않도록 단련한다. (이미 척추 건강에 비상이 걸렸다.) 주말 이틀은 대부분 외출을 하고 야외활동 시간을 늘린다.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니? 라는 질문에 그렇다, 대답하는 날에는 성취감과 안도감에 한껏 취한다. 이와는 반대의 날을 보냈다면, 깊은 자괴감이 뿌리 채 나를 흔든다.


야근 1분 1초가 속이 쓰렸던 정규직 시절과는 달리, 스스로 정한 노동시간에 몇 시간을 더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오로지 나의 선택과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가 프리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은 분명 기질이 작용했을 것이다. 자유, 안정, 돈, 명예, 여행, 꿈 등 정답이 없는 수많은 삶의 목표 속에서, ‘나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길. 프리랜서의 길 또한 수많은 모양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선택한 프리랜서의 삶에 후회는 없는가?


신중에 신중을 기해, 후회는 없지만 미련은 있다, 답하겠다. 한 눈 팔지 않고 앞을 향해 달리는 속도감도 꽤 괜찮았다. 같은 규칙과 정도를 지키는 근면성실함도 만족스러웠다. 안정감은 가장 큰 행복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숲속을 ‘프리하게’ 걸어가는 프리랜서의 삶이 매일매일, 천당과 지옥의 차이만큼 다른 감각으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