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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Feb 28. 2019

미국살이, 단골 카페가 생겼다

 쭈뼛거리며 들어서 어색한 미소와 익숙지 않은 영어로 주문했던 셀 수 없는 미디움 핫 아메리카노. 카페에 들어가기도 전에 읊조리는, 사이즈 먼저, 그다음 온도, 그다음이 커피 종류. 미디움, 핫, 아메리카노. 스타벅스는 프랑스식이지. 그랑데, 핫, 아메리카노. 미국에서 프랑스식 영어는 늘 뭔가 고급스러움을 상징한다.      


세이 어게인?을 듣기도 수십 번. 이제 나는 카페에 ‘정말’ 쉬러 간다. 카페도 못 가냐, 죄 졌냐, 스스로 다그치는 목소리에, 가지 왜 못 가냐, 집이 더 편하니까 그렇지.      


꺼림찍한 기분이 들면 피하기보다는 마주하는 성격이다. 그게 남-그러나 아끼는 타인들-이 되었든 자신이 되었든 집요하게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서 피곤해지곤 한다. 다그치는 목소리를 무시해서 기분이 묘하게 우울해진다면, 그 목소리가 정답인 경우가 많다.     


카페에 가다, 이 단순한 행위가 왜 나에게 그토록 중요했던가 했더니, 적응과 관련이 있는 행위였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음에 드는 음료를 주문하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곳. 카페가 편안하지 못하다면 어떤 곳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함이 다그치는 목소리의 진짜 이유였지 않을까.      



한국에 살 적에도 카페는 정말 자주 갔었다. 그래, 카페도 못가면 바보다. 워싱턴에 이사와 처음으로 혼자 카페를 가자, 결심했던 날의 결의의 찬 마음이 떠오른다. 주섬주섬 노트북을 챙겨 지하철역을 꼼꼼히 체크하고 찜한 카페로 향했다. 선글라스를 낀다. 햇빛이 눈 부신 것도 있지만, 불안한 시선을 가려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잠깐, 뭘 가린다고? 일단, 이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지하철에 울리는 승무원의 안내 방송은 잘 들리지 않아 정거장에 설 때마다 위치를 확인한다. 졸다가도 내릴 때 되면 귀신같이 벌떡 일어나 하차했던 한국과는 다르다. 휴, 벌써 지치네. 이러니까 내가 카페를 안 가지. 좀 편하게 살자. 약한 소리를 해대는 마음의 소리를 밀쳐낸다.      


찜한 카페에 도착, 읊조렸던 주문 내용이 직원의 얼굴을 보자 하얗게 날아간다. 웃음기 없는 일상의 낯선 얼굴에게, 오늘, 이 순간, 너무나 도전인 내 얼굴이 동요되고 말았다. 그 순간의 기분을 기억한다. 평온한 일상을 대하는 그 얼굴이 공포스러웠다. 어쩌지, 난 오늘이 너무 특별한데. 일상처럼 입을 뗄 수 있을까. 아메리카노 미디움 사이즈 주세요. 아, 핫 커피요. 계획처럼 되지 않고 뒤죽박죽된 주문. 그래도 커피는 나왔다.        



  

두근두근, 고딩 시절 짝사랑 상대에서 안 그런 척하는 기분과 비슷했던 특별한 도전기는 계속됐고, 나는 요즘 카페를 그날의 기분에 따라 골라 가곤 한다. 단골도 몇 군데 생겼다. 캘리포니아에서 살 때와는 달리, 스타벅스는 안 가게 된다. 도시 연결성이 좋은 워싱턴은 프렌차이즈와 대결해 보려는 개인 카페들이 많다. 그 호기로움은 개성으로 변주되어 유니크한 카페를 만든다.      


코피카페의 칠면조 클럽샌드위치.


첫 번째 단골을 삼은 콜롬비아하이츠역 ‘코피카페’는 80년대, 90년대, 2000년대-이제 2000년대를 말할 때도 20년 전이라는 수식어를 쓰게 됐다니 놀라울 따름이다-를 묘하게 섞어 놓은, 레트로 감성의 2층으로 된 카페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내가 고딩시절, 대학시절 즐겨 듣던 팝송이다. 세기말을 보내고 21세기를 마주했던 그때 그 시절의 예민했던 감성과 흥이 몸을 뚫고 나와 들썩거린다. 나 어셔랑 에미넴 CD 있었는데, 몰랐지? 남자친구에 슬쩍 흘려보는 의외의 취향. 신곡이 나오는 경우가 드문 코피카페, 부르노마스의 신곡은 코피카페와 찰떡같이 어울린다. 여기 DJ 누군지 참, 칭찬해주고 싶네.     


이 집은 클럽샌드위치가 예술이다. 칠면조햄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는 치킨샌드위치만 먹다가 칠면조샌드위치를 맛본 뒤로는 줄곧 칠면조샌드위치만 주문한다. 칠면조 특유의 감칠맛과 향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주문하면 빵을 버터에 토스트하고 햄과 베이컨을 따뜻하게 굽는다. 오픈키친 형식이라 요리를 확인할 수 있어서 더 좋다. 신선한 토마토와 샐러드, 짭쪼름한 햄과 베이컨이 환상적이다. 같이 나온 감자칩은 덤이다. 양이 많아서 처음에는 반으로 썰어져 나온 샌드위치 한 개를 못 먹곤 했는데, 이제 미국식 음식양에 적응한 위장이 거뜬하게 해치운다.     

커피는 특별할 게 없지만, 카라멜마끼아또가 에스프레소로 나온다는 점이 좀 다르다. 코피카페에서 처음 카라멜마끼아또를 주문해 본 날, 직원은 여기 카라멜마끼아또는 좀 다르다고 열심히 설명한다. 마침, 다른 카페에서 카라멜마끼아또 에스프레소를 경험해 보고 반한터라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주문해 보았다. 카라멜마끼아또를 주문한 또 다른 날, 다시 설명을 하려 하길래, 아아, 알고 있어요. 직원이 날 떠올렸는지 씩 웃으며 갓 잇. 옙, 아이 갓 잇.     


팀갓에 가면 꼭 주문하는 카라멜솔트비스코티


패드럴트라잉앵글역에 있는 팀갓카페는 주말에 일찍 문을 닫아 아쉽지만, 시간이 되면 자주 찾는 카페다. 주말에 갔다가 몇 번이나 헛걸음을 했는지 모른다. 이 카페는 갈 때마다 바뀌는 그 날의 스프가 참 맛있다. 생소한 스프 이름들이지만, 맛은 왠지 모르게 익숙해서, 추운 날 허기를 달래기 딱 좋다. 이 카페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따로 있다. 카라멜솔트비스코티. 너무 부드럽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적당한 식감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달콤함과 짭짤함에 반했다. 이국적인 카페 인테리어도 포근하고 편안하다. 한켠에서 팔고 있는 이런저런 소품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최근에는 맥펄슨스퀘어역의 파니니집, 포인트차드 카페를 자주 간다.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식사면 식사, 커피면 커피, 이런 경우가 많은데 이 카페는 그 경계선이 모호해서 브런치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파니니만 파는 것은 아니지만, 파니니가 정말 맛있어서 파니니집이라고 부른다. 치킨, 참치, 가지 파니니를 주문해 먹어봤는데, 뜨끈하니 어느 것 하나 실망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지샌드위치의 매력을 알게 되어서 기뻤던 곳. 카페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은데, 맛있는 파니니가 맛있어서 자꾸 찾게 된다.     


또, 마음에 들었던 책방 안 지하 카페, 연어샌드위치가 맛있었던 카페도 있다. 커피공방 같은, 은근하고 특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카페는 벼르고 있다. 그 유명한 블루보틀도 가야지, 가야지 하고 있다. 오늘은 어떤 카페를 가볼까, 의기소침한 마음을 차오르게 만드는 향긋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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