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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Sep 06.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44-신암행어사 리뷰10 즐거운영원

인간의 고통스런 삶을 극복하는 영원한 즐거움.


춤에 부친 또다른 노래. 2


...
 

2.

그러자 생명은 이렇게 대꾸했다. 그 아리따운 두 귀를 막고서.

 

“오, 차라투스트라여! 제발 그처럼 무섭게 채찍을 휘두르지 말라! 알고 있을 텐데. 소란이 생각들을 죽인다는 것을, 그토록 정겨운 생각들이 내게 떠오르고 있어 하는 말이다.

우리 두 사람은 실로 선한 일도 악한 일도 하지 않는 자들이다. 우리 선과 악의 저편에서 우리가 머물 섬과 푸른 초원을 찾아내었지. 우리 단둘이서! 그러니 우리는 서로 화목해야 한다!

우리가 서로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속 깊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서 반드시 서로 언짢아해야 하는가?

내가 네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것, 때때로 너무나도 큰 호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다. 이유는, 내가 너의 지혜를 질투한다는 데 있다. 아, 제정신이 아닌, 늙고 멍청한 여인, 지혜여!

언젠가 너의 지혜가 네게서 떠나버린다면, 아! 그렇게 되면 나의 사랑 또한 서둘러 네게서 떠나버리리라.“

 

이렇게 말하고 나서 생명은 생각에 잠긴 채 뒤를,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너 내게 나무랄 데 없을 만큼 신실하지는 못하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너 나를 그토록 사랑하지도 않는다. 네가 나를 곧 떠날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나 알고 있다.

웅웅 소리를 내는, 낡고 둔중하디 둔중한 종이 하나 있다. 웅웅 그 소리는 밤중에 너의 동굴에까지 울려온다.

자정이 되어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너는 하나에서 열둘 사이에서 궁리를 하지.

오, 차라투스트라여. 나는 알고 있다, 네가 곧 나를 떠날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 그러나 너는 이것도 알고 있다.” 나는 머뭇머뭇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그의 귀에 대고 뭔가를, 그의 엉클어진 노랗고 멍청한 머리다발 사이로 뭔가 말해주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너 그것을 알고 있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싸늘한 저녁 기운이 깔린 푸른 풀밭을 바라보며 함께 울었다. 그때 내게는 생명이 나의 지난날의 온갖 지혜보다도 더 사랑스러웠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

 

하나!

오, 사람들이여! 주의를 기울여라!

둘!

깊은 자정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

셋!

“나 잠을 자고 있었노라, 잠을 자고 있었노라-,

넷!

“나 깊은 꿈에서 깨어났노라 : -

다섯!

“세계는 깊다,

여섯!

“그리고 낮이 생각한 것보다 한층 깊다.

일곱!

“그의 아픔은 깊다-,

여덟!

“기쁨은-가슴을 에는 고뇌보다 더 깊다 :

아홉!

“아픔은 말한다 : 사라져라!

열!

“그러나 모든 즐거움은 영원을 원한다-,

열하나!

“-깊디깊은 영원을!”

열둘!











/









한때 차라투스트라는 지혜를 추구했다. 그리하여 학자가 되었으나 학자들이 자신을 질투하고 폄하하는 것에 지쳐 그들을 떠났다. 그래서 이제는 생명 그 자체를 구애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이 생명으로부터도 떠날 준비를 한다. 이 모든 여정은 결국엔 힘에의 의지를 추구하는, 자기 자신을 찾고 오직 자신이 되기 위한 여행이었으니.


인간으로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계를 품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진실. 그것은 바로 아픔은 깊고 사람들은 고통을 거부하지만 사실 선과 악이 전도될 수 있듯이 슬픔과 기쁨도 그러하고, 모든 즐거움은 깊디깊은 영원을 원한다는 것이다. 리는 모두 기쁨을, 즐거움을 추구하는 존재고 그렇기에 더 나은 힘을 원하며, 그렇다면 절망이나 허무나 고통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단순히 나쁘거나 악한 것만은 아니다. 니체가 다른 저서인 우상의 황혼에서도 이렇게 말한 바 있지 않던가.


Whatever doesnot kill you, simply makes you stronger!


"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인간으로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가치이자 도덕이다. 모든 동물 생명체는 고통을 피하고 생존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자 가치니까. 허나 인간이 단순히 원숭이 시절을 넘어서 정말로 더 높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단순히 고통을 피하려 들다가 스스로 퇴락하고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시적인 쾌락과 기쁨이 아닌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이 고통스러운 삶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내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고 니체는 선언한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부활한 신암행어사의 문수도 그러할 것이다...




부활한 문수가 기적따위 없어도 자신은 아지태를  반드시 이긴다고 호언장담하자 이를 지켜보던 아지태는 적진 한복판에 나타나 대체 어떻게 자기를 이길 작정인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곧바로 눈빛 한번으로 대지를 날려버리는 자신의 신같은 힘을 보여주지만, 문수는 눈도 까딱하지 않고 오히려 네 잘난 능력으로 지금 당장 여기를 완전히 파괴해보라며 아지태를 더 도발한다.



하지만 이는 문수의 또 하나의 계책이었다. 아지태는 재미로 놀고 싶어서 사람을 죽이고 전쟁도 일으키는 놈이니 자기가 흥미로운 내기를 걸면 반드시 걸려들 것이고, 그러면 이를 통해서 아지태는 결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이런 유치한 도발에도 걸려드는 수준낮은 존재라는 점을 아군에게 보여준 것이다. 이를 통해 역으로 과연 아지태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는 자기 진영을 단결시킬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반응한 아지태도 문수의 생각을 읽어낸것인지 자기가 문수에게 한방 먹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재미난 구경거리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물러나서 일식때 결판을 내자는 문수의 선전포고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타인의 마음속 읽어내는 독심술 사용할 수 있는 아지태는 문수가 흔들리고 있음을 확신한다. 이전에 문수를 아지태의 힘으로부터 지켜주던 계월향의 기적이자 저주가 완전히 풀려서 신체 분명 날렵해졌지만, 이전처럼 아지태의 힘에서 완전히 안전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문수도 의식하기 때문이리라. 죽음이라는 고통에 가까이 간 인간은 누구나 흔들리기 마련이니까. 이런 문수에게 아군들도 의심이 생기고, 특히 이전에 활빈당으로서 문수와 싸우기도 했던 태유는 도대체 아지태를 어떻게 이길 거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총사령관 문수는 우리가 아지태를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폭탄 선언을 한다. 당연히 태유부터 시작해서 그러면 대체 우리는 왜 싸우는 거냐고 반발하는 사람이 생겨난다. 나를 포함해 이를 읽는 독자들도 대체 문수는 무슨 생각이지 하고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이에 문수는 담배를 한대 태우면서, 촛불이 꺼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찬란하게 타오른다는 '회광반조'라는 고사성어를 들고 온다.



문수는 말한다. 생물도 아닌 촛불조차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한다는 인간이 겨우 아지태라는 특이한 능력이 있는 악마자식 한 놈한테 덜덜 떨어서야 되겠냐고. 이 문수의 발언은 마치 초한지에 나오는 유방의 수하 중 대장군, 회음후 한신이 구사했다는 배수진이나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 사즉생을 떠올리게 한다. 강을 뒤에 두고 적을 맞이하는 배수진은 흔히 병법에서 최악으로 치는, 바보같은 무리수고 여겨진다.


허나 대장군 한신은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서 병사들에게 이제 어차피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놓였으니, 정말로 죽기살기로 싸우는 수 외엔 아무 살 길이 없으니 다같이 죽어보자고 미친듯이 병사들에게 심리전을 걸었고, 이에 사기가 크게 오른 한신의 군대는 도망칠수도 없는 강 앞이라는  불리한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적을 패퇴시켰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 직전에 말했다는 생즉사 사즉생,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병사들을 독려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문수도 바로 이렇게 우리가 다들 살기를 원한다면 오히려 죽음을 각오하고, 이제 온갖 고통과 역경이 가득 아지태 군대와의 전투를 미친듯이 온몸으로 불살라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문수가 정말로 단순히 자기 부하들에게 정신무장만 강조하고 아무런 다른 준비도 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2차 대전당시 일본도를 들고 탱크에 돌격하라고 말했다는 졸장 다름없을 것이다. 실은 이전에 문수가 암행어사 일을 하면서 여진족의 위협으로부터 구해주었던 고구려 국의 원군이 이미 도착해있으며, 5년전 서양에 있을 당시에 인연을 맺었던 서방국의 군대도 바다를 건너 문수를 지원하기 위해 오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문수는 아지태와의 최종결전이 그야말로 엄청난 전쟁이기에 부하들의 가능한 모든 능력을 다 짜내기 위해 이런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론도 들고 왔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은 최종적 승리를 확신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부하를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니체가 너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 했듯이, 문수도 아지태라는 신같은 힘이 우리를 두렵게 하긴 하지만 결국 회광반조처럼 모든 것을 불사른다면 고통을 받더라도 우리는 더 강해질 것이고 마침내 승리할 것이라는 뿌리깊은 신념이 있는 것이다.






이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의 마지막 장. 일곱개의 봉인 그렇다 또는 아멘의 노래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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