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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Oct 13. 2019

어제 서초동 촛불을 김수영 시인께서도 보셨을까

부끄럽게 살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지난주 토욜 저녁에 조용히 서초동을 찾았다.



거의 모든 언론이 등을 돌렸는데도 놀랍게도




사람들은 생소한 서초동에 그렇게나 많이 모였다




다소 노골적인 의도의 그림과 피켓. 허나 그럼에도



뺏긴 태극기를 되찾고 목소리를 내려고 또 모였다.



재밌게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본만화 캐릭터 깃발도



이 수많은 태극기들과 함께 휘날렸다.



집회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한 분이 떠오른다


김수영 시인도 하늘에서 보고 계실까.


옹졸하게 살고 절정에서 비켜서 살고 있는


1원 때문에 너무나 작아지는 나...


김수영 시인께선 또 나를 꾸짖으실까


아니면 오늘 잘했다면서 소주나 한잔 하실까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 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째 네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 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켜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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