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덴마-야엘 로드를 벤야민과 산책하기2

만화로 철학읽기-덴마와 벤야민2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조금 서글픈 진실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뻔하고 슬픈 말이지만, 억압과 차별이 없는 시대는 인류의 역사상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사람마다 신분과 계급이 다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애초에 타고난 게 다른 법인데 대우를 다르게 받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아에 스스로의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와 집단을 만들고, 심지어 제도권 내에 극우 정당을 만들고 떵떵거리며 차별을 조장하며 운영하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이 국가, 사회의 현실이라고.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허나 이런 불행한 역사의 진실에 대응하는 힘도 역사상 존재해왔죠. 진정한 예술은 항상 그러한 현실에 맞서서 상상력의 힘으로 현실의 중압감에 맞서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양영순의 웹툰 덴마-야엘로드 편도 바로 그러한 이야기의 전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냥 전형은 아니고 약간 비틀린.


작중에서 가장 가난하고 몸도 작은 최하층 계급 피코로 태어난 주인공 야엘은 어릴 때부터 인간의 가장 기본중의 기본인 밥 문제부터 차별을 겪습니다. 심지어 이를 도와주고 해결해줘야 마땅한 보육시설의 선생도 넌 최하층 계급이니까 불평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며 야엘을 윽박지릅니다. 이러면 당연히 사람으로써 어이가 없고 화가 나지만, 야엘은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식사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자신을 더 짜내고 더 힘내서 뛰어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에 대한 억압을 잘 이겨내며 씩씩하고 당찬 야엘조차도 버티기 힘든 일이 있 마련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억압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타자에 대한 억압이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처럼 나를 욕하는 건 괜찮지만 내 가족이나 내 친구에 대한 욕은 나에 대한 모욕보다 더 참기가 어렵지요. 심지어 연주자라는 꿈에 대한 좌절에 겹쳐, 죽은 자에 대한 모욕이라는 이중적 차별을 그냥 듣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종종 사람들은 자기 일도 아닌데 타인의 고통에 관심가지는 사람들을 관심종자니 정치병이니 몰아세우고 조롱하지만, 어쩌면 야엘의 경우처럼 우리는 타자의 고통과 억압에 민감할때만 진정으로 차별적 구조를 깨뜨리는 강력한 저항의 원동력이 생겨나는 걸지도 모릅니다. 한국인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그러했듯이. ... 어쩌면 벤야민이라면 이런 순간을 '지금시간'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기억을 현재에 불러와서 지옥같은 현재의 동일한 반복을 깨뜨리는 '지금시간'.


하지만 이러한 저항의 순간은 당연히 기존 체제의 강력한 억압에 부딪칩니다. 참다못한 야엘이 죽은 소녀와 같은 방식으로 자살을 결심하려 하는 차에, 자신에게 미래를 본다는 데바림 종족의 선생님이 남겨준 기록을 마지막으로 꺼내보게 됩니다.



너무나 유명한 건축물인 영웅의 전당. 만화 나루토에서도 이와 비슷한 구조물이 나온 적이 있죠. 당연히 원 모티브는 미국의 러쉬모어 산에 있는 4인의 거대한 조각상입니다. 그동안 이 위대한 전당에는 피코가 아닌 상류 계급만이 조각되었지만, 데바림 선생님은 이 전당의 가장 높은 곳에 바로 최하층 계급 피코인 야엘이 올라갈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자살 직전까지 갔던 야엘은 이 예언을 통해 더더욱 놀라운 헌신의 노력을 다하게 되어 국회 보좌관까지 올라갑니다. 물론 거기서도 상위 계급들의 온갖 차별과 억압을 받지만, 미래에 대해 확신이 생긴 야엘에겐 아무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정해진 미래가 있으니까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어떠한 어려움도 사소한 것이 되어버린다. 야엘은 이런 말 하는 것에서는 단순히 개인적 신념이 아니라 종교적 신앙이 느껴집니다. 그 누가 현재의 나를 억압하고 조롱하고 나에게 고통을 주든 나는 반드시 내 구원의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서사. 이는 의심할 필요도 없이 전형적인 기독교적인 구원의 서사입니다. 야엘로드는 분명히 계급 갈등과 경제적 차별이라는 흔한 진보주의 또는 유물론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신학적인 지점과 결합합니다. 그리고 벤야민은 바로 이렇게 이질적인, 섞이기 어려워 보이는 유물론과 신학을 결합시켜서 나치가 득세한 2차대전중의 독일인으로서 자신만의 새로운 역사철학을 펼쳐나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인, 신학적인 자세로 과연 괜찮은 걸까요? 혹시 작중의 야엘처럼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게 되면 기존의 신학은 오히려 없으니만 못한 거짓된, 허무한 낙관주의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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