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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Apr 26. 2020

고양이랑 함께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훔쳐보던 일기

모든 글에는 일기같은 습작이 필요하니까?



남의 일기를 들춰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짜릿하다. 특히나 역사의 파도를 넘어 길이길이 읽히는 고전을 남긴 학자의 일기는 마치 달콤한 과자가 잔뜩 들어있는 크리스마스날의 보물상자같은 냄새를 풍긴다.






자주가는 동네카페의 터줏대감. 고양이 언니도 어쩌면 벤야민의 명작냄새를 눈치챈건가. 자기 공간에서 내가 쓰담쓰담해도 누워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서 내 테이블로 뛰어왔다.




뚱냥뚱냥한 언니는 마치 사진 찍으라는 듯 포즈를 매우 잘 잡는다. 아마 어쩌면 이 카페를 들르는 사람들의 손길과 눈길에 익숙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학습했을지도 모른다. 벤야민이 말하는 소비로 행복해지는 법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이 자기도 모르게 상품을 물신화하고 유행이라는 제의를 통해서 마치 순간적으로 신을 만나려 한다고 하는 것처럼?지름신?


그러나말거나 언니는 폴짝 뛰어와서 책에서 냄새를 맡는다. 어떨까 우리 귀여운 언니냥은 고전에서 오래된 추르의 잔향이라도 맡았을까. 아니면 택배를 시키고 기대했다가 받고서 실망하는 흔한 한국인처럼 움츠러들게 될까?


1917년에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 있었지만 1927년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벤야민은 거기서도 마치 거대한 성당같은 백화점의 파사주, 자본주의의 신전같은 아케이드를 만났다. 공산주의 사회의 정부라서 해서 단순히 모든걸 배급하거나 화폐없이 물물교환을 하는게 아닌, 단순 시장을 넘어선 자본주의의 총체인 백화점도 있었다. 나는 이런 내용을 언니를 보며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아쉽게도 언니는 처음엔 내 말을 들어주다가 질렸는지 아니면 재미없는지 등을 돌렸다. 역시 예상은 했지만 쉽지않다. 하지만 인간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법. 하나씩 천천히 또 언니와 함께 읽어보기로 하자. 마치 벤야민이 그의 연인 아샤를 보러 모스크바의 추위와 낯설음을 견딘 것처럼...



 

벤야민은 “어떤 도시에서 길을 잘 모른다는 것은 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마치 숲에서 길을 잃듯이 헤매는 것은 훈련을 필요로 한다” 라고 썼다. 당시 내게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그 낯설음으로 인해 ‘숲에서 길을 잃듯 헤매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장소였고, 그런 헤매임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익숙해 있던 한국 사회를 새삼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던 동력이었다.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독일로 돌아와 자신이 태어난 베를린을 ‘새롭게’ 보게 된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다. “이 도시에서 얻게 되는 새로운 시각은 의심할 바 없이 러시아 체류를 통해 얻어진 것이다. ...... 우리는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의식하면서 유럽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걸 배우게 된다.

...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벤야민이 어느 곳에서라도 늘 ‘길을 잃듯 헤맬’ 수 있는, 어떤 곳에서도 스스로를 낯설게 만들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벤야미의 글이 주는 통찰과 아름다움은 그의 삶에는 평안과 안정을 주지 못했던, 그렇기에 그 만큼의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했던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 것이다. 이 책의 독자들도 그런 벤야민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길을 잃듯 헤매는 법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김남시 번역. 13-14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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