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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an 10. 2021

한파 속에서 삶의 이유. 온기와 천사를 찾아서

추우니까 더 절실한 이 세상의 삶의 온기

 

 내 생애 가장 시려운 새해 첫 열흘이었다. 그저 군인시절 강화도의 겨울보다 날씨가 추워서가 아니다. 단지 옛 애인이 내가 못났다며 떠나고 차단한 그 겨울처럼 사람들의 말과 언동이 차가워서가 아니다. 마음의 뼈, 영혼의 척추가 시리고 몸도 따라 가라앉는 그런 십 일





 내가 좋아했던 아니 사랑했던 십센티의 노래 중에 '그게 아니고' 라는 명곡의 가사엔 그런 부분이 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서 자기 방에서 우는 흔하고 찌질한 한 남자. 그가 우는건 이전 여자친구가 남겨둔 양말 때문이 아니다. 보일러가 고장나서 울었을 뿐이라고. 어쩌면 그건 정말이다. 몸과 마음, 몸맘에 온기가 부족해지면 슬퍼지고 울고 싶어지는게 사람이다.




온기. 몸과 마음을 덥혀주는 따뜻한 기운. 어쩌면 이 힘든 삶을 살아가게 하는건 희망 같은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무엇이 아니라 구체적인 온기에 가까우리라. 헤겔 같은 철학자는 아마 이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구체적 보편 같은 어려운 말을 창조한게 아닐까 싶기도. 희망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저 사진 속 아이가 안고있는 고양이는 누가봐도 따뜻한, 희망의 온기다. 인간을 살게끔 덥혀주는.





 이렇게나 살을 에는 구체적 추위와 코로나라는 추상적 위협의 재앙적 콜라보 속에서, 이젠 정말로 외출 자체가 두려워지지만 그래도 한번 더 나가본다. 온기를 찾아서. 삶을 그래도 살아가게끔 하는 희망을 찾아서. 다행히 내 집에서 몇 걸음만 나가면 마당에 천사가 산다.




 내 집 앞 길거리 앞마당에 사는 작은 천사들.  살아있다고 애옹애옹 거리며 이 조그만 아이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같이 밥을 먹는다. 그리고 이 작은 천사들을 기르는 큰 천사님이 오늘도 장사를 하신다. 이 겨울 코로나에 오는 손님이 있을리가 없지만 그래도 가게문을 열고 등을 켠다. 그런 생각에 나도 몰래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른다.




천사들의 온기 덕분에 아주 조금 더 힘을 내서 춥지만 공원까지 나가본다. 추위 때문에 평소 자기자리 굳건히 지켜내던 아이들이 통 보이질 않는다. 오늘은 사람들처럼 길냥이들도 다들 방콕 라이프일까. 올라온 기대만큼 실망하고서 이제 도로 집으로 가려다가 다시 눈을 돌려본다.



 마치 곤충들의 보호색처럼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있던 아이. 그나마 자기 영역중에 작은 나무들 사이가 칼바람이 비껴가는 곳이었을까. 내가 손을 뻗어보니 귀찮다는 듯 살짝 자리를 옮기며 나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발을 옮기는 것이 인지상정. 천사의 얼굴을 보면 또 조금 온기가 내 몸에 차오를 듯하다.




 아마 희망이란 대단한 삶의 결심이나 로또 대박이나 서울대 합격아니리라. 아주 조금, 정말 조금의 온기. 나에게 냥냥펀치를 날리면서도 아주 도망가지는 않는 작은 천사님의 온기. 그러면 또 이 우울하고 차갑고 시린 겨울도 또 하루 지나간다. 그리고 이 겨울의 눈이 녹으면... 내가 사랑했던 한 만화 후르츠 바스켓의 대사처럼. 봄이 될 테니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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