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란 말을 오글거린다며 다들 꺼려하는 언어가 돼버린 21세기에도 사랑의 시라는 낭만주의계의 오래된 보물, 원피스는 실존한다. 아마 김춘수 시인 이후로 이름을 사랑스럽게 아름답게 다루는 21세기의 장인, 연시의 달인은 문학계의 아이돌 박준 시인일 것이다.
그의 대표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비밀독서단이나 유퀴즈 등을 통해 너무나도 유명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시를 또 새롭게 짜릿하게 즐길 방법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그 중 하나는 박준처럼 이름을 주요 소재로 쓰는 빛의 마술사,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과 박준을 같이 읽는, 한식 일식을 한 번에사치스러운 만찬을 상상하고 즐겨볼까
위의 시에서 시인도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을, 생계를 위해 날씨 이야기를 어색하게 나누는 사람들을 사귀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쓴다. 허나 그런 와중에도 남을 위한 자서전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한 대표적인 글 일기를 참지 못한다.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적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의 일기를. 안타깝게도 현실의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항상 아름답기를 바라기에
바로 이 마지막 문장에서 박준의 시는 신카이 마코토와 마주친다. 흔히 문학은 현실의 문제나 모순을 상상적으로나마 해소하는 주요한 역사적 기능을 담당해 왔다고 여겨진다. 근대 문학의 대표격인 세계문학, 시나 소설은 분명 20세기까지도 그러했다.
허나 가라타니 고진같은 비평가의 근대문학의 종언 같은 책까지 인용하지 않더라도, 문학이 지금시대 21세기에 쇠퇴했다는 건 굳이 큰 목소리로 떠들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전 문학처럼 현실의 문제나 모순을 상상적으로나마 해소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제 그 역할을 근대의 소설에서 영상물로, 특히나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문학에게서 바통을 넘겨받는 과정중이 아닐까.
박준이 시집 내내 이제는 만나기 어려운 듯한 한 여인을 그리워하듯이,
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 부터 계속되는 3작품 내내 핵심 주제는 재난과 사랑이다.
재난, 천재지변은 문자 그대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변덕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흔히 311 대지진으로 불리는 2011년 3월 11일에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과 그 여파는 단순히 천재지변만은 아닌 인간의 문제가 섞인 재난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대지진이라는 현실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다. 그치만 이런 현실의 문제를 가상의 창작물로 이슈화하려 하고 해소하려고 애쓰는 게 바로 예술가의 오래된 업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신카이 마코토는 박준처럼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을 수 있을까?
그의 영상을 따라 박준을 같이 읽는다면
너의 이름은 무엇인지 부르고 부르다가 목이 메어버릴 낮과 밤의 교차점, 황혼까지 당신을 부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