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낮 나는 멀리서 찾아온 친구와 최신 영화를 즐기고 미국 출장갔다온 후일담을 듣고 자주 가던 맛집에서 양껏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또 나만의 시간을 위해 내 취향의 만화와 축구를 보며 각본없는 드라마를 만끽했다. 이쯤되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일요일이 아닐까 싶은데 새벽이 찾아오자 난 또 백석의 시구처럼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잠들고 나면 또 출근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진 어른이는 오래된 스샷과 사진들의 바다로 깊이 잠수에 들어갔다
그 바닷속엔 온갖 암초가 가득했다.이제 분명 지나간 암초인데도 다시 그 뾰족한 기억들을 떠올리니 심장이 아프고 허파가 찔린 상처들이 다시 솟아난 듯했다. 갑자기 순간적인 서러움을 넘어 모든 게 허무하고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우울에 빠져든다. 근무도 빨래도 오늘 해야 하는데 다 때려치우고 침대와 한 몸이 될까 모든 걸 내려놓는 쉬운 길은 없을까 한숨을 쉬고
그렇지만 다행히 이 깊은 대양엔 지나간 암초만 저장되어 있지는 않다. 내가 매일매일 들여다보고 외우다시피 했지만 시간이 흘러 잊어버린 소중한 나침반과 보물지도들도 암초 옆에 걸린 채로 그대로 그대로. 분명 내가 굳이 하나하나 저장해둘만큼 내 마음을 움직였던 좋은 문장들과 좋은 사진들은 4년 만에 다시 본다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