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여러 사회적이슈와 개인적일들로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해가 떠도 부엉이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다행히 연례행사인 환절기 봄 감기는 스쳐 지나가는 중에 중간고사가 임박한 친구가 오늘은 자기동네 정보화도서관에서 같이밥먹고 공부하자고 연락이 왔다. 휴일에 같이 밥도 먹을겸 잘 안가던 신선한 도서관을 가면 리프레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바로 수락, 일단 다행히 친구와 먹은 밥은 역시 맛있었다
맛있게 먹고 힘이 났으니 이제 도서관에서 본격적으로 또 주말의 보물을 찾아볼까. 보물은 아무래도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으슥한 구석 가장자리에 숨겨져있는 경우가 많기에 도서관의 끝부분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의 신문 주간지 코너에서 익숙한 얼굴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으로바로 집어들었다
처음에는 마지막 인사라길래 아 녹색정의당의 심상정처럼 노동당의 홍세화 어르신도 이제 정계 은퇴를 하는건가 싶었다. 떠밀리다시피 진보신당 대표를 맡다가 스타 정치인 없이 노동당을 지키고,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의 초라한 성적표를 보시니 이제 그만 공식적으로 은퇴하시고 푹 쉬실 만도 하지 생각하며 신문을 폈는데... 은퇴가 아니라 부고. 별세하셨다는 뉴스였다.
고등학생 시절에 학급문고였나 학교도서관이었나 나에게 프랑스라는 이역만리의 톨레랑스, 관용에 대해 처음으로 알려준 책.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타인을 존중해야만 한다는 근대 사회의 기본이자 원리에 대해 큰 반향을 일으킨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95년 빨간 표지의 초판이 발매된 이후 무려 30년이 흘렀다. 05년에 파란 표지의 증보판이 나온지도 20년.... 그 30년동안 그저 빨갱이 때려잡자는 좌우 진영논리는 약해졌는가 작가님이 역설하던 상호존중과 관용의 정신은 좀더 뿌리내렸는가
분명 30년전 같이 북한이나 공산주의자 몰이같은 빨갱이 정치공세는 이제 큰 효력이 없지만...
안타깝게도 스마트폰과 sns같은 기술발달은 자기와 비슷한 입장만 계속 보고 듣도록 확증편향의 오류가 더욱 커진 듯하다. 이것은 보수 진보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고 서로 양쪽 진영으로 종교적으로 느낄만큼 선거때마다 단결한다는 행태를 인터넷 곳곳마다 발견한다. 어쩌면 오히려 30년 전 보다 서로의 의견을 교류하고 토론할 기회는 그저 퇴보한 시대일까
물론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는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그 자체이고 혐오의 시대에 그저 편승할 뿐 아무런 희망도 만들지 못하는 환멸과 절망의 언어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엄청나게 우편향 사회였던 8090년대 한국에서 처음으로 노동자 중심 진보정당이 국회 원내로 진출하고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라는 지금도 회자되는 대선 후보를 선발했던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분명히 이전보다 좌우의 균형이 나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정치인 조국에 동의하진 않지만 이번 총선에서 12석이나 얻은 조국혁신당이 사회권 같은 유럽에서나 나오던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며 자기들이 정의당을 대체하겠다고 하는 민주당보다 왼쪽을 걷는 행보 또한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보고 더 나은 사회를 꿈꾸던 이들의 후신이 아닐까. 오래된 정치 고전 책 이름처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개짓한다면 30년 전보단 나아졌으리라 믿는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백만권 가량이 팔린 홍세화 작가는 책 인세로만 50억의 큰 돈을 벌었지만 그 돈을 모조리 척박한 한국에서 진보정당의 초석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고 소액 벌금을 받은 자들에게 대출해주는 장발장은행 등의 사회적 기업을 위해 쓰셨다고 한다. 최근 총선에 유력정당에서 출마한 여러 후보자들의 재산논란 상속증여논란을 생각하면 고홍세화 작가님이 씁쓸하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