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맑고 비가 오니 유하 시인과 걷기
아직 오후 3시 날도 맑은데 소나기가 퍼붓는 날
그런 날이면 어디 흐린 주점에서 맥주 하나 시키고
시를 찬찬히 읽는다 피뢰침이 젖을 때까지
비가 몰아치고 홀로 우는 날에야 알게 된다
벼락은 두렵지만 두려운 만큼 매혹적인 빛 또는 힘
옥상에서 내 중지 손가락을 피뢰침으로 내민다면
나도 손끝부터 발가락 털끝까지 찌릿해질까
미친 전기뱀장어되어 세계를 감전시킬 수 있을까
뱀장어에겐 자기 연못 하나가 우주 전체이듯
시를 읽는 동안 나에겐 이 글만이 하나의 우주
우주를 방랑하는 떠돌이도 주인이 되는 날이 올까
대기의 주인 대지의 주인도 좋지만
다만 정말 바라는 건 그저 내 몸의 주인
내 몸뚱이와 내 영혼 부스러기의 키를 잡는 조타수
선원없는 전설의 범선 플라잉 더치맨의 선장
부러진 노와 찢어진 돛
녹슨 대포와 구멍난 그물로
괴물오징어 크라켄도 낚아올리는 시의 강태공
자 슬슬 가볼까
내 마음 속 심연의 해구를 지나
사시사철 벼락이 친다는 아마존 이름없는 해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