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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Aug 02.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24-마블 스포에세이 캡틴3

희생정신을 비웃는 현대적 합리성과 친구되기

니체 전집 번역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 다수 인용 및 필사함.


벗에 대하여 92-94p

 

"내 주변에는 언제나 한 사람이 더 있다.“ 은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언제나 하나에 하나를 곱하는 것이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둘이 되고 마는구나!“

늘 그렇지만 나는 또다른 나와의 대화에 너무 열성적이다. 만약 한 사람의 벗도 없다면 나 그것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은자에게 벗은 언제나 제 3의 인물이다. 이 제3의 인물은 마치 코르크와 같아서 두 사람의 대화가 심연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막아준다.

아, 은자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심연들이 존재한다. 그 까닭에 그들은 벗과 그 벗의 높은 경지를 동경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떤 점을 믿고자 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벗에 대한 우리의 동경, 그것은 우리 자신을 드러내주는 누설자다.

사람들은 때때로 사랑을 함으로써 시샘 그 하나를 뛰어넘으려 한다. 그리고 흔히 자신들에게 공격당할 허점이 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먼저 공격을 하고는 적을 만든다.

“나의 적이라도 되어달라!” 우정을 감히 청하지 못하는, 진정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벗을 원한다면 그 벗을 위해 기꺼이 전쟁을 벌일 각오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적이 될 줄도 알아야 한다.

벗 내면에 있는 적에게도 경의를 표해야 한다. 너는 벗을 향해 몸을 던지지 않고서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가?

사람은 자신의 벗에게서 최상의 적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대적하는 동안 너는 심정적으로 그를 더없이 가깝게 느껴야 한다.

너 너의 벗 앞에서 옷 걸치기를 마다하는가? 네가 너의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너의 벗에게 영예가 될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는 너를 오히려 악마에게 던져주고자 할 것이다.

자신을 조금도 감추지 않는 자는 화나게 만든다. 그러니 너희에게는 맨몸을 두려워해야 할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너희가 신이라도 된다면 걸치고 있는 옷을 부끄러워해도 좋겠지만 말이다!

네가 벗을 위해 아무리 아름답게 꾸민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너는 너의 벗에게 위버멘쉬를 향한 화살이 되고 동경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는 네 벗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일찍이 잠자고 있는 그의 모습을 들여다본 일이 있는가? 잠들지 않았을 때의 네 벗의 얼굴, 그것은 무엇인가? 면이 고르지도 온전하지도 못한 거울에 비친 네 자신의 얼굴이렷다.

너는 일찍이 잠자고 있는 네 벗의 모습을 들여다본 일이 있는가? 그 생김새를 보고 기겁을 하지는 않았느냐? 오, 나의 벗이여,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벗이라면 마땅히 미루어 짐작하는 일과 침묵하는 일에서 대가여야 한다. 너 모든 것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너의 벗이 깨어 있을 때 무엇을 하는지는 너의 꿈이 대신 보여주어야 한다.

너의 연민은 미루어 짐작하는 일에 능해야 한다. 우선 너의 벗이 연민의 정을 원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도록, 너의 벗은 너의 불굴의 눈길과 영원한 시선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벗에 대한 연민은 딱딱한 깍지 속에 감추도록 하라, 너 그것을 깨려다 이빨 하나쯤은 부러뜨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것은 섬세하고 감미로운 맛을 낼 것이다.

너는 네 벗에게 맑은 대기이자, 빵이자 영약인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고리조차 풀지 못한다. 그런데도 벗에게는 구세주가 되지.

너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벗이 될 수 없다. 너는 폭군인가? 그렇다면 벗을 사귈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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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에서부터 차라투스트라는 길동무를 찾았다. 그렇다면 자신과 함께 길을 떠날만한 벗이란 대체 어떤 사람인가? 니체는 이번 장에서 벗이라는 존재에 대해 상당 부분 우리의 상식을 뒤흔든다. 심지어 적과 , 적군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을 니체는 완전히 파괴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니체는 이 글의 도입부부터 만약 한 사람의 벗도 없다면 나 그것을 어떻게 견디어 낼 것인지 묻는다. 실로 그러하다. 우리는 결혼도 하지 않고 연애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계속 살아갈 수는 있지만, 만약 내 평생 단 한 명의 친구도 없다면 살아가는 것을 포기해도 결코 이상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를 계속 봐온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어찌 캡틴이 생각나지 않을 수 있까.

지난 글에서 다루었듯이, 캡틴아메리카1 퍼스트 어벤져의 마지막에서 캡틴은 정말이지 영웅적인 자기희생으로 페기 카터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서 그린란드에 폭격기를 불시착시키고, 냉동수면상태로 70년이 지나서야 깨어난다.



깨어나보니 당연히 7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브루클린의 말라깽이 스티브 로저스에게 세상은 낯설다. 여러가지 21세기에 대한 공부도 해보고 쉴드의 국장 닉 퓨리를 통해서 정보를 전해 듣지만, 그렇다 해서 닉 퓨리는 캡틴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캡틴의 정신적 상속자 두 사람, 하워드 스타크는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고 페기 카터는 70년이 지나 노환으로 병원에 있어 만나기도 어렵다. 가장 친했던 동네친구 버키는 이미 전쟁중에 열차에서 영원히 행방불명되었다. 그래도 캡틴 현 시대에 대해 메모하고 공부하면서 영웅으로서 이전의 하이드라같은 새로운 위기에 대비하려고 한다.


한국 버전에는 박지성과 올드보이 월드컵 메모가!


그리고 마침내 다른 별 아스가르드에서 빌런 로키가 와서 치타우리 셉터와 태서랙트의 힘을 통해 지구에 전쟁을 걸려고 한다. 다행히 로키의 형제인 토르가 로키를 쫓아와서 바로 로키를 잡는 것에 성공하지만 이 강력한 슈퍼히어로들은 서로가 어색하고 처음이기에 팀워크라고 말할 만한 것도 없다. 당연히 서로가 히어로 동지, 친구라는 의식조차도 희박하다.



심지어 다른 별에서 온 토르와 아이언맨 사이보다도 같은 미국 출신인 캡틴과 아이언맨 사이가 더욱 멀고 험악해보일만한 연출도 나온다. 아이언맨은 닉 퓨리 자체가 의심스러운 스파이 아니냐며 자신들을 불러모은 진짜 목적을 알아내야 한다며 쉴드 시스템을 해킹한다. 이를 보며 경악하는 리얼 군인 캡틴은 우리는 쉴드에 있는 이상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이언맨은 그런건 자기 스타일 아니라며 콧방귀도 뀌지 않 해킹을 계속한다.


이렇게 토니 스타크가 쉴드건 닉퓨리던 믿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자 화난 스티브 로저스는 토니와 본격적인 언쟁을 벌인다. 이 장면에서 적지 않은 한국 관객들이 캡틴을 꽉막힌 꼰대군인 취급하면서 아이언맨이 더 합리적인 리더라고 손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나도 그렇고 이 12년 개봉 당시엔 아이언맨 1, 2편은 봤어도 퍼스트 어벤저는 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으나 더더욱 천칭이 아이언맨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 또한 니체가 벗을 위해서는 벗과도 전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을 떠올리게 하지는 않는가? 벗 안에서 최상의 적을 찾아내야 한다고 니체는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흔히 친구와 친구 아닌 자. 또는 아군과 적군을 이분법적으로 가른다. 친구는 내 말을 들어주고 내 편에 서서 같이 싸우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친구가 아닌 적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니체는 이 벗에 대하여 장에서 그런 단순한  이분법을 분쇄해버린다. 벗을 위해서는 벗을 적으로 만들 수도 있어야 한다고 니체는 말한다. 그리고 이 어벤저스 1편에서 토니와 로저스의 언쟁은 바로 이런 니체의 잠언을 마치 그대로 표현하는 것만 같다. 캡틴은 전쟁중의 군인 출신으로서 희생 정신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라고 역설하지만 공학자이자 경영자 출신인 토니에겐 철조망이 방해되면 그걸 확실하게 잘라내는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합리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토르는 한심한 말싸움이라며 웃음으로 응수한다. 마치 니체가 말한 제3의 코르크 마개처럼. 이후 로키의 치타우리 셉터에 있는 마인드 스톤으로 세뇌당한 호크아이와 이성을 잃고 헐크로 변해버린 브루스배너 때문에 쉴드는 난장판이 되어버린다. 심지어 로키의 탈출을 저지하려던 콜슨 요원은 죽음을 맞는다. 이는 어쩌면 토니와 로저스가 이런 언쟁 없이 착실하게 로키에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미연에 방지했을지도 모르는 사고였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각자 자부심 높고 자신의 가치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영웅들 사이에서 어쩌면 이런 충돌과 최고의 가치들 간의 논쟁은 필연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어벤저스 2 3 4에 이르기까지 캡틴와 아이언맨의 갈등은 어벤저스 시리즈의 중요한 스토리텔링 요소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단한 슈퍼히어로들이 힘을 합칠 수 있게되고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힌트는 니체가 남긴 말 속에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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