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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Aug 13. 2019

사진에세이-우리가 사랑한 만화속 소녀들과 페미니즘2

동화속 공주와 왕자가 문제일까? 과연?



글을 시작하기 전에 공주라는 키워드와 관련해서 십년도 더 지난 나의 부끄러운 스무살적 기억을 한번 꺼내본다. 2019년 지금의 사람들이 다들 페북이나 인스타를 하듯이 내가 스무살때는 싸이월드가 그야말로 대세, 아니 지금의 카톡 수준의 기본 대화창구였다. 그러나 이 싸이를 즐기는 데엔 큰 난관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나와 친한 사이임을 증명하는 일촌 사이를 맺을 때 일촌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너에게로 가서 꽃이 되겠다는 김춘수의 시 꽃 같은 것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일촌명을 서로 지어주는 일이 꽤나 쉽지 않은 작업임을 싸이를 겪어본 30대 이상은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나의 경우엔 그나마 묘책이랍시고 생각한 것 중 하나가 남자는 ~~의 왕 철학황제 이런식으로 지어주고 여자는 ~~공주 딸기공쥬 이렇게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촌명을 대충 지어준, 부끄러운 발상이었다. 내 주변 사람의 일촌명이 전부 그렇게 되어있으니 조금 웃겼던지, 딸기를 좋아하길래 딸기공주로 지어준 친구여자 하나가 반쯤 농담삼아 방심하던 나에게 이렇게 날쌘 잽펀치 한방을 날렸다                    


    "야! 너 여자들은 공주라 불러주면 다 좋아하는 줄 알았지!?"              


     십년도 더 지났는데도 그때의 상황과 그 친구의 표정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우습게도 그 친구의 이름은 이제 민정인지 민지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도 말이다. 그만큼 난 뜨끔하고 당황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어찌 보면 그 친구는 나에게 페미니즘적인 관점에 대해 처음으로 알려준 고마운 벗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 참고로 오해를 피하기 위해 굳이 말해두자면 나는 남성 페미니스트, 유니콘 같은 그런 존재는 될 수가 없는 그냥 흔해빠진 갱상도 출신의 한국 남자다. 그 외에도 그 어떤 무슨무슨 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뭔가 배울 점이 있다면 무슨 사상이든 접해보려고, 열려 있으려고 노력해보는 정도의 아마추어 인문학도 정도?





이제 다시 지난 강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최현미 기자이자 작가님은 자신도 딸을 키우는 50대 여성으로, 에게 디즈니 애니를 보여주는 것이 자칫 여성은 예쁘고 귀여운 공주여야 한다는 전형성을 의식적으로 강제하든지 무의식적으로 주입하든지 간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게 아닐까 고민했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과연 동화 속 공주들이 그 자체로 문제고 유죄인 것일까? 우리는 자칫 이런 과거에 대해 평가할 때 단순히 현재의 기준과 잣대를 쉽게 갖다대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오류의 대표적 사례로 그 대단하다는 서양 철학의 고전을 읽어본다면, 원전 자체에서 그 위대했다는 칸트가 여성은 철학을 하기엔  지능이 부족하다고 비하했다는 구절이나, 서양 학문의 아버지라고까지 추앙받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은 감정적이니까 정치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구절 등등 과거의 성차별적 한계를 찾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다. 꼭 이런 젠더 이슈만이 아니더라도, 프로이트나 뉴턴 다윈 같은 위대한 과학자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자기의 완전한 이론입네 하고 논문으로 써놓은 글도 분명히 있다. 허나 단순히 과거 학자들에 대한 질투나 원한으로 쉬운 비판 또는 속된말로 까봤자 대체 무엇이 남을까? 하다못해 그렇게 해서 분풀이는 제대로 된 것일까?


 조금 옆길로 샌 느낌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는 단순하다. 과거를 단순히 현재의 기준으로 쉽게 판단하지 말자는 것. 항상 의미를 맥락 속에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천년 뒤 사람들이 볼때는 생계 때문에 매일 돈에 매달리는 자본주의 체제 속의 우리들 대다수가 그렇게나 미개하게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수천년 전 식인 풍습에 대해서 과거 사람들은 정말 야만적이었다고 쉽게 손사래를 치는 것처럼. 이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에서 다룰 날이 올 것이다. 그리 머지않아.





우선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같은 주요 공주의 전형이 탄생한 19세기에 대해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전에는 자본주의 자체가 아직 세계를 휩쓸기 전이었고, 19세기에 와서야 유럽사회는 점차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노골적으로 말해서 화폐가 최고의 권력이라는 관점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유럽도 분명 혈통이나 명예, 연장자 등등이 돈 못지않은 권력의 지표였던 사회였다. 그러면 이제 무엇이 돈을 낳는 돈, 무엇이 자본이 될 수 있는가 가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전에는 결혼도 비슷한 신분끼리 당연히 나이가 차면 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이제 결혼도 단순히 비슷한 신분간의 결합이 아니라, 어떻게 더 나은 자본을 만들 수 있는가가 주안점이 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엔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던 여성의 매력 등이 하나의 '매력자본'으로 기능하게 되었고, 선택을 당하길 기다리는 수동적 주체에서 능동성을 가질 수 있는 여지가 19세기에 생겨난 것이다. 이를 흔히 낭만적 사랑, 자유 연애의 탄생이라고 부른다. 아직 이혼이 자유롭지 않은 19세기에 이는 한 여성으로써 일생일대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한 나라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있는 공주 후보자에게 이는 굉장히 중요한 능동적 선택의 기회가 아니었을까.


허나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에릭 왕자는 분명 흰 구두에 멋진 드레스를 입은 신데렐라에게 반했음에도 12시에 그녀가 사라지자 또 다른 왕국의 공주들과 만나보며 계속 그녀들과 결혼하면 어떨지 계산해보고 저울질한다. 게다가 나중에 신데렐라의 집까지 찾아와서도 무슨 안면인식 장애가 있는지 못 알아본 척 하고는 사라져버린다. 이를 최현미 작가님께서는 17 18 세기에 동화가 처음 탄생할 때, 동화를 쓸 수 있는 교육받은 사람은 거의 귀족 남성일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시민 부르주아 또는 귀족 남성의 이데올로기가 동화에서 드러나는 것이라 설명하셨다. 이런 것이 바로 시대의 한계이자 니체의 말을 빌리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계가 아닐까. 21세기엔 아동에게 들려주는 동화들도 새로운 각색이 필수적인 게 아닐까.





그래서 작가님은 최근 디즈니 안의 여성상의 변화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시는 듯 했다.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를 이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차세대 리더가 될 것이 확실한 캡틴 마블은 내가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원작과는 달리 스스로 왕국의 최고지도자 술탄에 오르는 쟈스민 공주나, 아직 그 능력을 완전히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마블 캐릭터중 최고의 지능을 가진 천재로 묘사되는, 블랙팬서2의 주요 인물로 나올게 확실한 와칸다의 과학자이자 엔지니어 슈리도 있고, 더더욱 설명이 필요없는 곧 개봉할 겨울왕국2의 안나 엘사 자매도 존재하지 않는가?희정 선생님 같은 분의 표현을 따르자면 '디즈니 페미니즘' 이라고 명명해도 무방할 정도의 영화들을 우리는 매년 감상하고 있 게 아닐까?





이렇게 새로운 소녀의 전형과 가치를 창조해내고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있지만, 작가님은 그 중에서도 말괄량이 삐삐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최애캐라고 고백하셨다. 남들이 자기를 뭐라 말하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며 매일매일 모험을 즐기는 삐삐. 어쩌면 문학계엔 지유로운 남자의 전형으로 그리스인 조르바가 있다면, 서브컬쳐 만화계엔 자유로운 여성 캐릭터로 말괄량이 삐삐와 스즈미야 하루히 양대산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망상이 멋대로 들기도 했다.





그치만 이렇게 최애캐 삐삐를 열성적으로 설명 내지는 전도? 하신 후에 다음 이야기는 만화를 보면서 마음이 아파졌던 소녀에 대한 이야기였다.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할배의 84년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대한 이야기였다...



... 계속




여러분들은 마음아프게 공감했었던 소녀가 있나요


그 자기 마음 안의 소녀와 지금도 만날 수 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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