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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Aug 15. 2019

사진에세이-우리가 사랑한 만화속 소녀들과 페미니즘3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리고 다양한 소녀들

우리는 종종. 아니 어쩌면 항상 영웅을 소망한다. 허나 영웅은 그 강대함만큼 아픈 존재가 아닐까. 지난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최현미 작가님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처음 보실 때부터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나우시카는 가족도 잘 돌봐야 하고 자기 국가, 공동체 전체를 책임지기 위해 전투도 잘 해야 하고 심지어 한번 망해버린 이 세계 자체를 구원해야 한다. 도대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고 단 하루라도 쉴 틈이라는 여유로운 시간은 주어지질 않는다. 그래서 영웅은 강하지만 애처로운, 불행한 존재이기 쉽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아마 이런 전형적인 영웅상과는 반대로 장난기 많고 뭐든 자기 맘대로 하고 싶어하고 파티를 즐기는 현대적 영웅으로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대기업을 상속받은 재벌2세이기도 하다. 내가 사장이니까 아무때나 휴가갈 수 있다는 농담을 칠 만큼 여유롭고 재치있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토니가 그늘이 없는 사람인 것이 아니라 친한 벗에게도 자기의 그늘을 감추려 하는 쪽에 가깝지만. 이렇게 다른 영웅상을 제시했기에 아이언맨이 그렇게나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게 아닐까... 허나 나우시카는 그런 영웅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고, 그래서 이 소녀의 영웅적 투쟁은 너무나 찬란하고 강하지만 너무나 힘겹고  불행하다. 이에 대해서는 또 따로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상세한 스포일러 에세이를 쓰는 날이 올 것이다... 최현미 작가님 나우시카 다음으로 소개하신 소녀는, 바로 들장미 소녀였다.



'외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하늘 바라보면 노래하자 내이름은 내이름은 내이름은 캔디~ ' 지금 다시 들어보니 아이들이 듣기에는 상당히 서글픈 만화주제가 멜로디와 가사 같기도 하다. 한국에 들어온 제목부터가 '들장미 소녀 캔디' 아니었던가... 최현미 작가님도 어릴때 캔디가 고난을 겪는걸 보며 굉장히 감정이입하고 슬퍼하기도 하셨다고 한다.


허나 시간이 지나서 다시 캔디를 감상해보니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라기 보다는 생각보다 괜찮은 멘탈갑 캔디의 성장 서사물이었다고. 그리고 캔디의 애인인 안소니는 원래 삐삐 이전에 작가님의 최애캐였는데 감히 캔디의 뺨을 때리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기에 그뒤로 최애캐에서 탈락했다는 후일담이 있었다. 또한 한때 모든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테리우스는 왕재수에 잘난 왕자님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철드는 게 보이는 나름 성장형 캐릭터라니 조금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음에 만화방에 가면 죽치고 앉아서 캔디를 한번 테리우스 중심으로 읽어보아도 꽤 즐거운 시간이 될 듯하다.



캔디처럼 지금 다시 어도 새롭게 더 재미있는 고전급의 작품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지금의 시각으로 읽으나 예전 감성으로 읽으나 별로인 캐릭터도 있기 마련이다. 작가님은 키다리 아저씨나 피터팬의 웬디를 그다지 높이 평가하기엔 난감함이 많은 캐릭터로 보시는 듯 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말할것도 없이 그저 돈과 권력으로 얼굴도 모르는 남을 쥐락펴락하는 변태일 가능성이 높고, 설사 그런 변태가 아니라 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현실에 그런 남자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적어도 내 주변에 있을 가능성은 제로라고. 그리고 웬디는 영원히 아이로 있고 싶은 피터팬에게 끌려다니다시피 하고, 심지어 피터팬이 웬디에게 자기의 엄마가 되어달라고 하자 대놓고 오케이 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이를 받아들이는 듯이 계속 피터팬 옆에 있으면서 이 어린 아이들을 돌봐주는 포지션으로 남아 있는다 점에서 좀 실망스럽다고 하셨다.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엄마로서의 웬디를 단면적으로만 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위 사진은 최현미 작가님의 따님이 만든 사진예술로, 피터팬은 하늘을 날지만 계속 어린아이로 남아 있고, 웬디는 날지 못하고 땅에 있지만 피터팬보다 더 거대한 어머니 대지같은 느낌이 든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자칫 우상화할 필요야 없겠지만, 저번 글에서 디즈니 공주를 재평가했듯이 시각을 달리해서 피터팬의 엄마 웬디를 재평가하는 것도 나름 신선한 재미가 있을 법하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도 이전과는 달리 재평가와 재해석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니까. 이에 대해선 1세대 2세대 3세대 페미니즘 등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 또한 별도의 글에서 다뤄보는 날이 오리라.



그리고 이제 우리는 가장 현대적인 소녀 빨간머리 앤을 만난다. 뭐 굳이 구차한 설명이 필요할까.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시대이니 직접 감상하시길. 저의 얼마 안되는 구독자분들과 이름모를 독자들 모두 앤처럼 웃고 춤추고 친구를 만나시기를... 지금이 바로 완벽하게 행복해. 라고 마음 속으로 읊조리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할 뿐.




이제 우리는 이 강연의 엔딩에 가까워졌다. 작가님은 처음에 지금 21세기의 대표 소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엠마왓슨의 헤르미온느를 엔딩으로 구상하다가, 결국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엔딩으로 정하셨다고 한다. 자칫 너무 전형적이고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으로 엔딩을 내버리면 우리 마음 속 어린시절의 소중한 감성 자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할까봐 걱정하셨던 것이 아닐까. 내멋대로 나는 감히 추측해보았다. 동물들과 교감하면서 알프스산맥 전체를 자기 집처럼 뛰어다니는 하이디를 싫어하는 사람이 남녀에 상관없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남자 여자 상관없이 이런 소녀 감성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남자 여자 상관없이 사실 남성적 투쟁심과 공격성을 가질수도 있듯이.






이제 두시간 가량의 도서관 강연 끝이 났다. 꽤나 많은 어릴적 좋아했던 소녀들을 다시금 상기해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치만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굳이 자기의 소중한 시간을 내서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만화를 볼까. 단지 재밌어서일까? ...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조금 진부하지만, 결국은 사실 나 자신을 찾아나가는 여정이 아닐까. 좋아했던 소녀든 싫어했든 소녀든 결국 그들을 경유하면서 나는 우리는...  앨리스와 챗셔 고양이의 저 대화처럼, 우리는 어느 길을 가도 나에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멈춰서 쉬기도 하고 ... 방황하더라도, 꾸준히만 걷는다면.


Ende.







P.S. 권혁웅 시집 마징가 계보학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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