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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Aug 26.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36-신암행어사 리뷰2. 진실 보기

진실과 악한을 회피하지 않기. 문수처럼.

세상살이를 위한 책략에 대하여 242-244p




세상살이를 위한 나의 세 번쨰 책략은 너희가 겁에 질려 있다 하여 악한 자 보기를 마다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이 부화하고 있는 경이로움들, 이를테면 호랑이와 종려나무 그리고 방울뱀을 바라보는 나는 행복하다.

사람들 가운데도 작열하는 태양이 부화한 새끼가 있으며, 악한 자들에게도 경이로운 일이 많이 있다.

실은, 너희 가운데 더없이 지혜롭다는 자들조차도 내게 그토록 지혜롭게 보이지는 않듯이, 나 사람들이 악하다고 할 때 그 악이란 것도 그 명성만큼이나 대단하지는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 자주 머리를 저어가며 물었다. “너희 방울뱀들이여, 왜 아직도 딸랑딸랑거리는가?”

진정, 악에게도 아직 미래는 있으렷다! 사람을 위해 저 더없이 뜨거운 남녘은 아직 발견되지도 않았고.

고작 열두 피트의 넓이에다 생후 삼 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뿐인데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더없이 고약한 악이라고 불리고 있는가! 언젠가는 한층 더 거대한 용들이 이 세상에 나타나리라.

위버멘쉬에게는 그의 품격에 맞는 용, 여느 용을 능가하는 그 이상의 용이 있어야 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뜨거운 태양이 촉촉이 젖어 있는 원시림 위에서 제대로 작열해야겠다!

먼저 너희의 살쾡이는 호랑이가 되어야 하며 독두꺼비는 악어가 되어야 한다. 내로라 하는 사냥꾼이 사냥을 제대로 해야 하니!

그리고, 진정 선하다는 자들이여, 그리고 의롭다는 자들이여! 너희에게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허다한데,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악마”라고 불려온 것에 대한 너희의 두려움이 그러하다!

너희의 영혼, 너희는 위대함과 거리가 멀다. 위버멘쉬가 선의를 갖고 있을 때조차도 너희는 그가 무서울 것이다!

위베먼쉬는 즐겨 그의 맨몸을 지혜의 뙤약볕에 쪼인다. 너희는 그러나 그 뜨거운 뙤약볕을 견디지 못해 달아나고 말 것이다! 현명하다는 자들이여, 그리고 지혜롭다는 자들이여.

너희, 내가 만난 최상의 인간들이여! 짐작건대 너희는 나의 위버멘쉬를 악마라고 부르리라! 이 점이 너희에 대한 나의 의혹이며 은밀한 웃음이다.

아, 나 이들 최상이라는 자들과 최선이라는 자들에 지쳐버렸다. 나 그리하여 저들의 “높이”를 뛰어넘어 위버멘쉬를 향해 위로, 밖으로 그리고 저쪽으로 가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이들 최선의 인간이라는 자들이 맨몸으로 목욕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그때 전율이 나를 엄습했다. 바로 그때 먼 미래를 향해 날아갈 수 있는 날개가 내게 돋친 것이다.

그 어떤 창조자가 꿈꿔온 것보다도 한층 더 먼 미래로, 한층 더 남녘다운 남녘으로. 신들이 자신들이 걸치고 있는 옷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그곳으로 날아갈!

나 변장하고 있는, 몸을 잘 가꾸고 허풍을 떨어가며 “선한 자 그리고 정의로운 자” 인 양 뻐기고 있는 너희가 보고 싶다, 이웃들이여, 동료 인간들이여.

그리고 나 또한 변장한 채 너희 틈에 앉아있고 싶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도록 말이다. 이것이 세상살이를 위한 나의 마지막 책략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흔히 진실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진실은 중요한걸까. 중요하다면 과연 나는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까. 우리의 안락과 삶의 쾌락들을 모두 양보하고서라고 추구할만한 진실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흔히 욕망이나 쾌락을 악마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진실은 선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니체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악마가 너의 소망을 이뤄준다면 우리는 거부할 수 있을까


지난 글, 세상살이를 위한 책략 전반부에서 니체는 그 책략 첫번째로 악한이 자신을 속이더라도 속아 넘어가 줄 것, 두번째로는 허영심에 가득찬 이들처럼 뛰어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될 것을 말했다. 후반부인 이번 글에서는 세번째 책략으로 악이 경이를 부린다하여도 그 악을 제대로 마주보겠다고 하고, 마지막 네번째 책략으로는 지혜의 강렬한 햇볕을 견디지 못하는 자칭 선인, 정의로운 자들을 비웃으며 설령 자신이 악마라 불리더라도 그들 틈에 섞여 변장해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니체의 이런 말들은 참으로 오해받기 쉽다. 마키아벨리가 지금 시대엔 훌륭한 공화주의자로 재평가받지만 이전엔 '결과,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 말 한마디로 그의 사상이 요약되어,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 자체가 악마적인 사상이고 정치가에게 하나의 욕설처럼 쓰이기도 했으니. 니체도 혹시 마키아벨리처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연기나 변장, 거짓도 상관없다고 본 것일까? 난 이런 의문점에 대해 해명하고 대지의, 자연의 이치에 대해 니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신암행어사의 에피소드가 바로 유의태의 만다라케 침 에피소드가 아닌가 생각한다.




망해버린 나라 쥬신의 암행어사 문수는 섬에서 서양무기 밀매상을 처리하는 도중에 한 젊은이로부터 이상한 소문을 듣는다. 외딴 섬에서 전염병으로 모두 죽어가는 와중에 유의태라는 사람이 침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기적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허나 문수는 그 이야기를 듣자 이미 겪어본 이야기라는듯이 쓴웃음을 지으며 단호히 말한다. '기적'이라고 쓰여 있으면 '사기'라고 읽어야 한다고...




그리고 나선 섬에 도착해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을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한다. 그를 데려온 청년 허준은 이런 짓은 살인귀나 하는 짓이라며 말리고 산도인 춘향도 문수의 일방적인 살인 명령을 거부하지만, 문수는 자신의 신념에 한치의 의심도 없이 마을 사람들을 보는 족족 그야말로 악마처럼 죽여나간다. 마치 니체가 타인들에게 악마라 불리더라도 자신의 사상을 밀고나가는 것처럼. 문수가 허준의 누나마저 죽이려고 하자 결국엔 목표인 유의태,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을 보인 자가 등장한다.



유의태는 허준에게 마을 사람들을 살려낸 만다라케 침의 비밀을 밝힌다. 이 침은 일종의 환각제로, 사람을 고뇌에서 해방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세계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주는 침이었다. 허준과 섬 사람들은 전염병으로 죽는 게 아니라 살기를 원했고 유의태 자신은 그 소원을 들어줬을 뿐이라고... 이는 전형적인 악마가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스토리텔링이 아닌가. 허나 이런 유의태의 자기변호를 문수는 단칼에 잘라버린다.



문수가 생각하기엔 인간은 자연의 이치를 따를 때, 즉 인간답게 살고 죽을 때에 인간이며 그것을 벗어나먼 이미 인간이 아니다. 실제로는 이미 시체이고 좀비인데 얄팍한 사술로 자신이 되살아 났다는 환상은, 문수가 보기엔 용기가 부족해서 진실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에 니체도 이런 인간의 한계에 부딪쳤을 때 쉽게 기적같은 환상을 바라지 말고 오히려 악이라는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라고 말했으리라. 사실은 악마라는 것들이 일으키는 경이도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진실. 이렇게 진실을 제대로 바라볼 용기가 있어야만 악한들이 사기를 치면서 기적이라 말하는 세상살이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는 현대의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던가? 비트코인이나 주식 대박, 기적의 부동산 수익률을 말하는 사기꾼들은 지금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처음엔 이 감당할 수 없는 진실 자체를 두려워하던 청년 허준은 진실을 파헤치려는 문수를 따라가는 것 자체를 주저했지만, 결국 용기를 내서 이미 누나가 사망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기 위해 직접 쏘기에 이른다. 문수도 약간의 술책과 산도의 도움으로 결국 유의태를 해치우고, 이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이리라. 강력한 전염병으로 섬사람들이 모두 사망했는데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 사실은 자신도 이미 죽었지만 유의태의 만다라케 침으로 살아난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것...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내면 속의 악을 제대로 마주보는 이런 용기가 바로 니체가 보았어도 기립박수를 쳤을 진정한 용기가 아니었을까.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인 인간은 기적을 바라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런 부족한 존재, 인간이기에 거짓된 현실을 직시하고 부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번 에피소드를 다시 읽으면서, 난 내 안의 진실이 다시 두려워졌다.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문수처럼 대단한 용기와 결단력은 아니더라도 저 청년 허준처럼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추후에 자기 자신의 진실을 깨닫고 인정할 수 있을까. 부디 이 글쓰기가 그런 진실에 한 용기를 쌓아가는 하루 하루로 훗날 돌아볼 수 있기를, 태양을 바라보며 부끄럼없이 떳떳한 나이길... 소망한다...


Ende.









P.S. 생각보다 길어졌지만 오늘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부 읽기를 끝내고 내일모레부터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 기승전결의 절정 부분인 3부로 들어가기로 한다... 다음달 9월엔 이제 차라투스트라 읽기를 마무리하고 벤야민이나 들뢰즈 등 니체를 이어받은 다른 현대 철학자의 책을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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