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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열 Mar 05. 2022

긴 말이 필요해

퀵 실버(Quick Silver) 4 - 생각보다 빨리 실버가 되었다

  

자료출처: 네이버 <해피아워>


런닝타임 317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피아워>를 관람했다.하루에 한번만 상영하는 것도 특이했지만, 영화시간이 5시간이 넘는다는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물론 <드라이브 마이카>로 이미 감독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더 컸다.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기 까지...2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지루할 틈도 없고, 영화 속 이야기에 계속 몰두해 있었다.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장면을 한참을 보고 있다 일어섰다.여운이 오래 남았다. 영화의 이야기도 좋았고, 감독의 이런 독특한 연출방식도 좋았고 제일 맘에 든 것은 317분의 런닝타임이었다.


-해피아워 인터미션-


무슨 긴 말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나는 오히려 더 긴 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TMI를 운운하며 말이 많은 것을 탓하는 세상이지만, 살아보니 광고처럼 늘 짧고 명확한 한마디로 산다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가끔 두딸과 소맥 한잔 하면서 우리 3부녀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수다삼매경에 빠진다. 딸의 남자친구 고민부터 직장 뒷담화 등등 말의 꼬리를 물으며 계속 궁금한건 물어보고 대답하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는다. 책방 주변 젊은 사장들과도 마주치면 눈인사만 하고 가기 바쁘지만 가끔은 안부도 묻고 이야기를 건네면 오히려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까지 말해주는 상함을 보일 때가 더 많다.

그들도 말을 안 할 뿐이지,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짧은 말보다 긴 말이 더 친근하고 진실함을 전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눈빛을 보면 알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긴 영상(컨텐츠)에 익숙하지 않다. 2시간 짜리 영화도 길어서 유투브로 요약본을 찾아보고, 드라마도 빨리보기로 봐야 하고...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순간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순간도, 혼밥을 먹는그 시간도, 조금이라도 틈만 나는 짧은 시간에 요즘 사람들은 뭐든지 봐야 한다. 같은 시간안에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하니까,효율적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호흡이 긴 영상 보다는 짧게 짧게 요약되어 있어야 한다. 10분짜리 영상 하나보다는 오히려 1분짜리 10개의 다양한 영상을 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10년 전 나의 첫 소설 <돌싱유치원>을 쓸 때, 나는 정말 한 장 한 장을 쓰는게 너무 나 큰 고욕이었다. 늘 글을 줄이는 것에 익숙한 나였는데, 이제 그것을 다시 100장 넘는 이야기로 풀어서 늘리자니 말처럼 쉽게 늘려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어색하고 또 굳이 이런 말까지 넣어야 하나 할 정도로 문장을 늘리는 것이 줄이는 것보다 백배 어려움을 경험했다.     


오랜 기간 카피라이터로 살아오는 나의 직업병 중에 하나는 15초의 강박관념이다. 적어도 30분 이상 설명해야 되는 이야기를 압축해서 15초로 줄여야 한다. 사족이 있어서도 안 되고, 쓸모 있는 말만 골라서 써야 한다.

그러다보니 긴 장문을 쓰는 것은 지금도 어렵다     


생각보다 빨리 실버가 되었다

말이 길어지는 사람과 있으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어제 17년만에 후배가 책방을 찾아 왔다. 반가움은 둘째 치고 보자마자 우리의 이야기는 근 2시간 끊임없이 이어졌다. 과거사를 묻는 건 잠시 최근의 맛집 이야기까지 우리의 화제는 끝이 없었다. 이런 게 꼰대라고, 주책이라고 말 해도 좋았다. 사람이 좋은건지? 아님 추억이 그리운건지? 아님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좋았다. 좋은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만약 우리의 대화가 TMI를 걱정하면서 입을 다문 커피만 마시고 헤어졌다면 어땠을까?

좋았을까? 쿨했을까?       


Old? Alled!

사람은 모두 늙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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