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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열 Mar 11. 2022

두 손 잡채

같은 음식, 다른 이야기

유난히 우리 가족은 잡채를 좋아한다.

굳이 생일이 아니더라도 자주 잡채를 해 먹는다.

엄마 말씀을 빌리자면 처음엔 야채를 잘 먹지 않는 우리들을 위해서 반찬으로 잡채를 해 주기 시작하셨는데, 지금은 모든 가족이 잡채 매니아가 되었다.     

어릴 적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엄마는 잡채를 해 주셨는데, 우리집만의 전통이랄까 잡채를 그릇에 덜어 먹지 않고 맨손으로 손을 모으면 그 위에 잡채를 가득 올려주셨다. 그럼 먼저랄 것도 없이 잡채를 입에 갖다 대고 후르륵 폭풍 흡입을 했다. 친구들은 다들 신기해하면서도 너무 재밌고 맛있다면서 금새 빈 손을 엄마에게 드리 밀곤 했다. 잡채는 원래 이렇게 먹는거라며 엄마는 손위에 가득 잡채를 올려 주셨다. 

우리는 이것을 <두 손 잡채>라고 불렀다.     


원래 음식은 손맛이라고 했는데, 정말 손맛이 무엇인 줄 제대로 알게 해 준 특별한 경험이었다. 

엄마의 손맛으로 가득한 잡채의 맛에 나의 손맛이 더 해진 지상 최고의 잡채 맛이 되어 버렸다. 겨울에 김장 김치를 꺼내서 자르지 않고 통째로 놓고 손으로 쭉쭉 찢어서 밥 위에 올려 먹는 맛 같은 느낌일 수도 있다.

왠지 손으로 직접 집어 먹으면 더 맛이 있는 것 같은...     


이제는 칠순이 넘으신 엄마의 잡채를 예전 만큼 자주 먹지는 못 한다. 나이가 드셔서 힘들어하시기도 하지만, 원래 잡채가 손이 많이 가고 재료도 많이 준비를 해야 하는 음식이다 보니 큰 맘 먹지 않고는 쉽게 하기 어려운 음식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손녀들의 생일 아침엔 잡채를 해주시는데 피는 못 속이는 것일까? 나의 두 딸들도 두 손으로 잡채를 받아 먹는 것을 좋아한다. 3대가 모여서 즐거움을 함께 하는데 필요한 것은 오직 잡채 하나면 충분하다. 격식을 따지지도 않고 서슴없이 깨끗이 씻은 두 손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우리 가족에게 잡채는 화합의 음식이고, 자유로운 음식이다.     


엄마가 더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두 손 잡채의 추억을 만들어주신 것도, 잡채를 통해서 가족들에게 건강과 웃음을 만들어 주신 것도, 모두 엄마 덕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이가 드셔서 입맛도 늙다 보니 가끔 음식의 간이 안 맞아서 짜고, 달고, 시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엄마의 음식이 너무 맛있다.

짜면 짠대로, 달면 단대로 엄마의 음식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의 입맛도 많이 변하기 했지만, 아직 그대로인 것 중 하나는 잡채를 좋아하는 것이다. 굳이 엄마의 잡채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잡채는 다 맛있게 먹는다.

잡채만 보면 엄마가 생각나기도 하고 즐거운 기억만 있어서 그런가 보다.


비위생적이라고 탓하실지도 모르지만 그냥 집에서 잡채를 즐기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도전해 보시길 바란다. 절대 후회 없을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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