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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미리 정하면 꼭 틀어지고 마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이 징크스는 특히 장소에 빛을 발하는데요, 계획하고 날 잡고 가는 곳은 하필 그날 문을 닫고는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내일모레 퇴근하고 여기 구경 가야지’
-> ‘정기 휴일 아닌 휴무’
‘친구랑 약속 날 이 식당에 가야지’
-> ‘오늘따라 재고 소진’
제 즉흥력에 한껏 힘을 보탠 징크스이죠. 계획을 하지 않으면 제 징크스가 작동할 일도 없고 실망할 일도 없으니 말입니다. 고등학생 땐 학급 친구들과 날을 잡아 석식시간에 다 같이 짜장면을 먹으러 15분가량 걸어갔는데 문을 닫았더군요.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친구들과 여행을 갔습니다. 뚜벅이로 어렵게 찾아간 밥집이 문을 닫았더군요. 저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엔 미루고 미루다 어렵게 평일에 시간을 내서 병원에 갔습니다.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문을 닫았죠. 이젠 깨달았습니다. 그건 저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스마트하게 영업시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여기던 순간들도 많았는데,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 패턴은 계속 반복되고 있어요. 이제는 미리 찾아보고 가도 문을 닫으니 더욱 억울하더군요.
친구들은 이런 제 경험담을 들을 때마다 ‘그냥 우연이야’라고 말하지만, 횟수가 쌓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계획 세우기를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오늘 날씨 좋네, 어디 갈까?’ 하고 즉석에서 정한 곳들은 신기하게도 실패확률이 낮죠.
어쩌면 이 징크스 덕분에 더 자유로운 일상을 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계획에 얽매이지 않고 순간의 감정과 직감을 따라 움직이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가끔은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약속이나 업무 관련 일정은 어쩔 수 없이 미리 정해야 하죠. 그럴 때면 항상 플랜 B를 준비해 두곤 합니다. 가고 싶은 식당이 문을 닫으면 근처 다른 곳으로, 보고 싶은 전시가 휴관이면 주변 카페에서 수다라도 떨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런 징크스를 가진 건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누구에게는 우산을 챙기면 비가 안 오고, 누구에게는 세차를 하면 꼭 비가 오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면 다른 범위가 나오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꼭 실수를 하게 되는 것처럼요.
결국 징크스라는 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나름의 설명 방식인 것 같습니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패턴을 찾고 살아가는 재미가 있죠. 저의 경우에는 이 징크스가 오히려 일상에 더 많은 즐거움과 유연함을 가져다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징크스를 가지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