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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은 제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입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고 있을 때도, 다음 달 카드값을 걱정하며 라면을 후루룩 먹고 있을 때도, 핸드폰 속 세일 알림은 나를 무자비하게 유혹합니다. “지금 놓치면 후회할 거야! “라는 뜻의 알람이 마치 운명의 속삭임처럼 들리죠.
세일을 신호등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빨간불은 ‘정가’라고 불리는 그 무시무시한 상태입니다. 이때 저는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이런 걸 정가 주고 사는 사람이 있나? “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노란불은 ‘소폭 할인’입니다. 10-20%라는 애매한 숫자들은 저를 망설이게 하죠. 그리고 초록불, 바로 ‘대형 세일’입니다. 50% 이상의 할인율이 펼쳐지면 저는 마치 신호를 받은 듯 달려갑니다.
문제는 이 신호등이 24시간 켜져 있다는 점이죠. 온라인 쇼핑몰마다 어찌나 많은 세일 주기를 가지고 있는지, 언제든 어딘가에서는 초록불이 켜져 있습니다. 올영데이, 블랙프라이데이, 무슨 데이, 어쩌구 데이.. 그리고 각종 브랜드 기념일까지.
특히 “추가 할인 쿠폰”이라는 마법의 주문이 있죠. 이미 할인된 상품에 추가 20% 할인 쿠폰을 쓰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원래 가격을 잊어버린 채 할인된 가격만 바라보며 “이 정도면 공짜나 다름없지”라고 중얼거리곤 합니다.
세일에는 항상 시한이 있죠.
-오늘 밤 12시까지!
-선착순 100명!
-재고 한정!
이런 문구들이 저를 조급하게 만듭니다. 평소 같으면 며칠 고민했을 구매를 10분 만에 결정하기도 하죠. 나중에 생각해 보면 전혀 급하지 않은 것들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친구들과 세일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일종의 의무가 되었습니다. “야, 너 좋아하는 브랜드 지금 세일해” 하며 링크를 보내는 것이 우정 표현의 한 방법이죠. 우리는 세일 정보로 연결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월급날이 되면 “이번 달은 절약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핸드폰 속 세일 알림 하나면 그 다짐은 무너지기 일쑤입니다. 통장 잔고와 세일 할인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결국 저는 세일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세일이 없다면 아마 아무것도 사지 않을지 몰라요. 정가라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정가를 매기는 걸까? 세일 가격이 진짜 가격 아닌가?
이렇게 말하니 씁쓸하지만, 세일은 어쩌면 현대인의 소소한 희열이자 일상의 활력소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제가 합리화하는 것일지 몰라도요. 제품을 싸게 샀다는 성취감,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만족감, 그리고 무엇보다 평범한 일상에 작은 이벤트가 생겼다는 기쁨. 돈은 없지만 세일은 있으니까. 이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받아들이며 또 다음 세일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