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끝에서 찾은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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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녹아




저는 한의원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제게 힐링플레이스가 되었달까요. 침이나 부항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다행히 저는 제 몸을 찌르는 바늘을 뚫어지게 보고 있어도 멀쩡한 담력을 가졌습니다.


이번에도 손목이 아파서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온 병원을 돌아다니며 검사하고 주사도 맞아보고 약도 먹어봤지만 제 면역 체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결국 익숙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한의원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건 시간의 흐름입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일상과는 확실히 다른,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어디선가 은은한 쑥 향이 퍼져옵니다. 벽에 걸린 한약재 그림들과 오래된 한의학 서적들이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지혜를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맥을 짚는 한의사 선생님의 손길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합니다. 세 손가락으로 제 손목을 짚고 있으면 뭔가 제 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도 들면서 한편으론 어떤 말이 나올까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많이 예민하시네요. 잠은 좀 주무세요? “


단순한 진단이지만 마치 용한 무당이 내 속내를 알아챈 듯 깜짝 놀라곤 합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수치와 데이터로 설명되던 제 몸이, 여기서는 하나의 살아있는 이야기로 읽히는 듯합니다.


침을 맞는 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오랜만의 진정한 정적을 경험합니다. 바늘 하나하나가 제 몸에 들어갈 때마다 긴장이 풀어지고, 침실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음악과 함께 어느새 잠이 들었죠. 침술 후의 물리치료까지 돌고 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한의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치료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빨리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천천히 돌봐야 할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았어요. 제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죠.


그 순간 밖으로 나서면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급하게 걸어가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길가의 작은 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통증으로 의한 방문이었지만, 저는 그곳에서 더 깊은 쉼을 경험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여유와 자신을 돌보는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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