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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제 방 한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물건들을 해방시키는 숭고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바로 ‘나눔러’가 된 것이죠.
저희 집은 사실 작은 박물관입니다. ‘언젠가는 쓸 것 같은데’ 박물관. 세일에 홀려 묶음으로 과다 구매한 변기세정제나, 한 번 쓰고 박아둔 전자기기, 충동 구매한 운동기구 등 이들은 모두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였지만, 현재의 나는 그 미래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당근마켓의 ‘나눔’ 기능을 발견한 순간, 물건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제발 우리를 해방시켜 줘!”
그래, 이제 너희들을 진짜 주인에게 보내줄 시간이야.
나눔글을 올리기가 무섭게 메시지가 오기 시작합니다. “줄 서봅니다. “, “혹시 아직 있을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잘 사용하겠습니다!” 이런 정중한 메시지들을 보니, 마치 자선사업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아니, 잠깐. 나는 그냥 집 정리를 한 건데 왜 이렇게 뿌듯하지? 올라가는 매너 온도만큼이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입니다.
이 플랫폼은 현대인들의 소소한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앞 건물 1층에서 받아가시면 돼요”라는 메시지 하나로 우리는 잠깐이나마 이웃이 됩니다. 직거래로 만날 약속을 잡고 나가면 어디선가 서성이는 상대를 찾아 “혹시.. 당근이세요?”하고 묻는 행위도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나눔을 마치고 나니 방이 넓어졌습니다.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마음의 공간도요. 필요 없는 물건들이 사라지니 진짜 필요한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물건들이 제 역할을 찾아 떠나가는 모습을 보니, 마치 새 둥지를 떠나는 새끼새들 같았습니다. 나눔의 기쁨을 발견하는 과정이었으며, 낯선 이웃과의 작은 연대였죠. 집이 넓어져 이제 새로운 물건을 살 공간이 생겼네…라고 생각하는 저를 보며 어? 잠깐, 이건 또 다른 함정 아닌가? 하고 뜨끔 했습니다.
내일도 저는 당근마켓을 열어볼 것 같습니다. 혹시 또 해방시켜야 할 물건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말이죠. 어쩌면 누군가의 나눔 게시글에 “혹시 아직 있을까요? “라고 댓글을 달지도 모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