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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저의 여름 방학, 부모님의 여름휴가가 되면 으레 외갓집으로 향했습니다. 대가족이 우르르 삼촌 차에 몸을 맡기고, 어딘지도 모르는 산골짜기를 구불구불 달렸죠.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차에서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며 여름휴가는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여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같은 길을 따라 외갓집으로 향하고, 여전히 식구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습니다. 시간이 흘러 얼굴에는 주름이 늘고 키는 자랐지만, 휴가가 주는 설렘만큼은 변하지 않았어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큰 이모네 집 앞 개울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도시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물살에 쓸려 내려갑니다. 이모네 옥수수밭에서 직접 따온 옥수수 한 대를 손에 쥐고, 개울물에 발을 담근 채 앉아 있으면 그렇게 마음에 여유가 생길 수가 없어요.
물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바람이 수풀 사이를 스치며 지나갑니다. 매미 소리가 들려오고, 멀리 서는 강아지 짖는 소리가 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여름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휴식을 찾습니다.
도시에서의 바쁜 일상, 끝없는 업무, 복잡한 인간관계들이 모두 멀어집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시곗바늘도 천천히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급하게 어딘가로 달려가야 할 이유도, 누군가에게 연락해야 할 일도 없죠.
옥수수를 한 알 한 알 뜯어먹으며 생각합니다. 휴가라는 게 꼭 멀리 떠나거나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구나. 때로는 이렇게 어릴 적 기억 속 그 자리에서, 그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완벽한 휴식일지도 모릅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가고, 개울물은 여전히 발아래로 졸졸 흘러가고, 저는 여전히 여기 앉아 있습니다. 휴가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