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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난 여름에 태어났는데 왜 이렇게 더위를 많이 타? “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간다고 하던데,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저는 아예 추운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여름은 제게 고문과도 같았습니다. 학창 시절 이마에 휴지를 붙인 채 덥다며 짜증을 내던 제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들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선풍기 앞에서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 여름의 일상이었고, 에어컨이 없던 시절엔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습니다. 친구들이 바다며 수영장이며 떠들썩하게 여름휴가 계획을 세울 때, 저는 더운데 더운 곳에 왜 가냐며 겨울방학을 그리워하곤 했죠.
그래서인지 제가 꿈꾸는 이상향은 늘 추운 곳이었습니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앞에서 두꺼운 코트를 입고 뜨거운 코코아를 마시는 모습, 핀란드의 오로라 아래서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들이 제 상상 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삿포로의 끝없는 설원도 설레는 풍경으로 다가왔죠. 추운 것을 좋아한다기보단, 겨울의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코 끝이 시리도록 춥지만 차갑고 상쾌한 공기, 떠올리면 왠지 반짝이고 따뜻한 그 분위기를요.
물론 추운 나라에서의 삶이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겁니다. 몇 달씩 계속되는 극야, 높은 물가, 언어의 장벽 등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북유럽의 작은 마을에서 벽난로 앞에 앉아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는 제 모습을 상상합니다.
추운 나라에 대한 제 로망은 단순히 시원함에서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추운 나라들이 가진 특별한 정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긴 겨울밤을 견뎌내며 만들어진 따뜻한 실내 문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끈끈함, 그리고 혹독한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소박하지만 진실한 아름다움 같은 거요.
언젠가는 정말로 그 꿈을 실현해보고 싶습니다. 설령 짧은 기간일지라도,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작은 오두막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창밖의 설경을 바라보는 아침을 맞이해보고 싶습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고 싶은 마음, 소비와 경쟁보다는 여유와 성찰을 중시하는 삶에 대한 갈망일 수도 있고요.
그때가 되면 지금껏 품어온 추운 나라에 대한 마음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 비로소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추위 속에서 느끼는 진정한 편안함과 함께, 제가 정말 원하던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 찾아올 날을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