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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길을 걷다가 이마에 물방울이 떨어질 때, 본능적으로 인상을 찌푸립니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구름은 없고, 그제야 매미오줌이구나 하고 깨닫죠. 그리고 즉시 손으로 닦아냅니다.
머리로는 압니다. 그게 진짜 오줌이 아니라 매미가 나무 수액을 빨아들이고 남은 수분을 배출하는 것뿐이라는 걸. 사실상 나무에서 나온 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도. 심지어 완전히 깨끗하다는 것까지도. 하지만 그런 지식이 제 감정을 바꿔주지는 않죠.
‘오줌’이라는 이름 속에 이미 불쾌함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 단어가 주는 거부감, 나도 모르게 위에서 떨어져 맞을 수밖에 없다는 상황들, 대차게 시끄러운 주제에 지나가는 사람한테 오줌까지 갈긴다는 생각이 합쳐져서 만든 감정은 과학적 사실 몇 개로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요즘 들어 생각해 보니 삶에는 매미오줌 같은 일들이 꽤 많습니다. 별것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나쁜 것들.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과 단둘이 있을 때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는 그 어색함. 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과 어느 쪽으로 비켜야 할지 몰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겪는 그 순간의 민망함. 전화로 업무 할 때 상대가 못 알아들어서 다시 말해야 하는 상황의 부끄러움. 화장실 문을 밀어야 하는지 당겨야 하는지 몰라서 잘못했을 때의 그 뻘쭘함. 자동문인 줄 알고 기다렸는데 수동문이어서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때의 당황스러움. 버스에서 내릴 정류장을 지나쳐서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 할 때의 짜증. 길을 잘못 들어와서 유턴해야 하는데 차들이 계속 와서 못 나갈 때의 답답함. 마트에서 카드가 한 번에 안 찍혀서 여러 번 시도해야 할 때의 민망함.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는데 스팸 전화일 때의 허탈함. 회전문이 너무 빨라서 또는 너무 느려서 뒤 사람과 박자가 안 맞을 때. 자동 센서등이 꺼져서 혼자 팔을 흔들어야 할 때. 지하철에서 내리려는데 타는 사람들과 부딪칠 때의 불쾌함.
전혀 해롭지 않죠. 실제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불편하고 어색하고 피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입니다. 이런 감정들을 논리로 설명하려고 하면 바보 같아 보이지만 느끼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진짜의 감정이에요.
그냥 솔직하게 인정하려고요. 무해하다는 걸 알지만 기분 나쁘다고. 매미오줌이 완전히 깨끗하다는 걸 알지만 닦고 싶다고.
이런 저를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정직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정직한 비합리성이 합리적인 척하는 것보다 더 인간다울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