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꿈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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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녹아




저와 저의 일본어 선생님은 일본 서적을 전문으로 한 서점을 기획 중입니다. 오늘은 인테리어 견적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전체적인 디자인, 구도, 기자재, 소품까지 생각할 것이 천지라 머리에 과부하 오기 일보직전이지만 예전부터 품어온 꿈이었죠.


단순히 일본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일본 문학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숨을 고를 수 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하지만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오늘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과 마주 앉아 견적서를 펼쳐놓고 보니, 머릿속에서 그렸던 아름다운 상상들이 하나하나 숫자로 환산되어 나타났습니다. 원목 서가 한 개에 얼마, 조명 하나에 얼마, 책을 올려놓을 선반, 심지어 타일 하나하나까지.


“여기 이 부분은 어떤 느낌으로 하실 건가요?” 업체 사장님의 질문에 저는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느낌이라니. 저는 어느 교토 속 서점의 따뜻한 나무 향기와 은은한 조명을 떠올리며 “아, 바로 그런 느낌이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정작 그것을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하려니 막막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문득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만들고 싶어 했던 건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였다는 것을.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마치 일본 어느 작은 마을의 서점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곳.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책장 사이를 거닐 수 있는 그런 공간.


아직 해결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타일 색깔 하나 정하는 것도, 조명의 색온도를 결정하는 것도, 심지어 입구 문고리를 고르는 것도 모두가 이 작은 세계의 완성도를 좌우할 중요한 요소들이니까요.


하지만 책상 위에 펼쳐둔 견적서들을 보며, 이 모든 복잡함과 피로감 속에서도 여전히 가슴 한편이 뜨거운 이유는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테죠.


언젠가 누군가 제 서점에 들어와 한 권의 책을 집어 들고,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 미소 짓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오늘의 과부하도 기꺼이 견뎌봅니다. 꿈은 때로 이렇게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춰가는 과정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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