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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금 유치하고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요즘 가장 많이 읽는 주제는 ‘좀비’인데요, 그만큼 흔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좀비가 창궐하는 시대, 좀비에 물릴 위기에 처한 나. 상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상상 속에 들어갈 때마다 아, 나는 첫 번째로 죽을 사람 중 하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달리기를 못하기 때문이죠. 좀비 영화 속 주인공들은 숨이 차도 계속 뛰던데, 저는 숨이 차면 그냥 ‘아, 이제 죽는구나’ 하고 체념할 것 같아요.
가끔은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좀비에게 쫓기던 중 갑자기 좀비가 멈춰 서는 거예요. 왜? 내 발 냄새 때문에. 운동화를 며칠째 신고 있던 터라 좀비조차 역겨워서 도망가는 상황을 말이죠. 이게 바로 ‘독을 품고 독을 제압하는’ 전략 아닐까요? 평소에는 단점이었던 것이 생존의 무기가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요.
그리고 좀비 사태가 터지면 저는 분명히 가장 쓸모없는 생존자가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기를 만들고 바리케이드를 칠 때, “아, 배고프다” 하면서 라면을 끓이고 있을지도 몰라요. 팀원들이 “조용히 해! “라고 할 때쯤 이미 좀비들이 라면 냄새를 맡고 몰려올 것이고.
생각해 보니 좀비 아포칼립스는 의외로 저에게 유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평소 집에서 나가지 않는 집순이력 만렙인 덕분에 이미 자가격리 전문 가니까. 다른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에 적응할 동안 저는 이미 마스터인 거죠. “좀비? 그게 뭐 어때서? 나는 원래도 안 나가는데.”
결국 좀비 사태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체력도, 무기도 아닌 바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운이 좋은 것’입니다. 좀비에게 쫓기다가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넘어지는데, 그 바람에 좀비가 내 위로 날아가서 벽에 박히는 식으로.
어쩌면 가장 웃긴 건, 좀비 사태가 끝난 후에 저 같은 사람이 살아남아서 “어떻게 살아남았느냐”는 인터뷰를 받는 것이겠죠.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음… 그냥 운이 좋았어요. 그리고 발 냄새가 심했고요.”
이런 웃음 나는 이야기들이요. 세상이 아무리 심각해져도 결국 우리에겐 이런 엉뚱한 상상으로 웃음을 찾아내는 힘이 있어요. 그리고 그 힘이야말로 어떤 좀비보다도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생존의 비결인지도 모른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