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30
오늘은 소피가 차려준 식사를 마치고 시티로 떠났다. 이 열무비빔밥은 소피가 내게 해주고 싶어 했지만 요 며칠 계속 바깥에서 밥을 먹고, 일찍 밥을 먹어버려 해주지 못한 밥이었다. 슴슴하고 시원한 열무김치로 비빈 비빔밥은 정말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을 맛이다.
평일 오전의 시티는 정말 활기가 넘친다. 오후에 오히려 한적한 신기한 카페들. 아쉽게도 보지 못한 웜벳이 그려진 엽서에다 편지를 써서 마지막 우편을 하나 보내고 그 옆 도서관에서 공부도 했다. 적지 못한 날들에 나는 공부에 집중하며 보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오페라 하우스에 들렀다. 시드니는 나에게 이런 곳이다. 멋진 풍경으로 감동을 매번 선사해 주는 곳. 어쩜 이렇게 마지막까지 푸르른지.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인사하려니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고여서 야단 났다. 누가 보기 전에 얼른 쓱하고 닦아냈지만 자꾸 마음이 울먹울먹 해지려 한다.
주디와 함께 들러서 앉아 있던 벤치를 찾았는데 아쉽게도 공사 중이다. 다행히 때마침 한국인 관광객 분들이 옆을 지나간 덕에 마지막을 기념할 수 있었다.
주디와 처음 오페라 하우스를 왔을 때 들린 곳에 가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돌아가려다가 그냥 발길을 멈췄다. 어차피 오늘 하루 목적은 없다. 빈 벤치가 보여 앉았는데 언제나 그랬듯 시드니는 평화롭다. 나는 오랜만에 아무것도 안 하고, 말 그대로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 앉아서 이 평화를 마지막으로 누렸다.
공원에 앉아 있다 가고 싶어서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이런 핑계를 대서라도 마음이 더 머무르고 싶어 했다. 아무렇게나 철푸덕 앉을 수 있던 이 푸른 공원이 얼마나 자주 그리워지게 될까?
짐을 싸는 동안 소피는 내 앞 소파에 누워 있었다. 뭐든 주고 싶으셔서 꺼내오는 걸 안 받겠다고 하는 게 굉장히 난감했다. 나는 지금 짐이 너무 많아서 있는 것도 버리고 가야 할 처지다. 아무것도 안 받겠다 할 수 없어서 며칠간 내가 들고 다니던 열쇠에 걸려 있던 리본과 키링 두 개를 받았다. 이것들이 나의 호주 방랑기, 이 여행의 최종 기념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