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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Oct 22. 2023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23-03-31


아침에 대니와 소피의 마중을 받으며 나는 떠나왔다. 처음 시드니 트레인을 탔을 때의 낯섦이 생생한데, 마지막이다. 진짜 마지막.


 

어제 들은 강의에서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은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그 말은 즉 성장도 없다는 말이라고. 한자로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다. 그러니 언제나 위기의식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게 삶이라고 한다. 위기 없이는 기회도 없다. 발단-전개-위기-절정. 이야기의 기본 전개 단계다. 위기 없이는 절정이 없다. 그러니 나는 수많은 기회가 도사리는 곳으로 간다.

 


하지만 이런 기회 앞에서 나는 많이 울었다. 면세점의 향수 시향대 앞에서 걸려온 소피의 전화를 받고서 전화기에 대고 많이 울었다. 소피는 일을 하느라 자녀들이 어렸을 때 함께 시간을 자주 보내지 못했다. 요 며칠 나는 소피와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이상한 무생채를 함께 만들기도 하고, 된장밥이나 열무비빔밥을 먹으면서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눠가졌는데 그게 꼭 늦둥이 딸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나를 입양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했다고. 그런데 나 또한 새로운 엄마를 가진 기분이었다.

 


올해의 시작, 태즈메이니아의 시작에서 함께한 불꽃이 돌아온 한국에서 또 보인다. 이 성대한 환영은 또 나를 어떤 미래로 데려갈지 모르겠다.

 


나는 한국을 사랑하기에 호주로 떠났다. 그리고 마음의 빗장을 열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이건 돌아오는 길에 읽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내용이다.


다정했던, 그러니까 친화력이 끝내주던 호모 사피엔스는 공동체를 꾸렸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 외에도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동물들은 있다. 그것보다 우리는 대규모로 함께 살기 시작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이 넘치던 그 옛날이 그리운 건 나뿐만이 아닐 거 같다. 나는 분명 그런 정을 다시 나눌 수 있게 할 스파크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꿈이 없는 사람이었다. 살아온 27년을 정말 꿈 없이 살았다. 어떤 일을 하면서 너무 즐거워서 가슴 뛰어본 적이 없었다.


워킹 홀리데이에 가기 몇 달 전 얼핏 만들고 싶은 나의 세상은 생겨 났지만, 당장에 실현할 수는 없는 것들이라 꿈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은 아니었다. 그때는 내 꿈이 이런 모습을 띌 거라고, 이런 방향을 따라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러려고 호주에 간 건 아니었다. 꿈을 꾸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하면서 시간이 빈 걸 메꾸러 갔다. 그런데 나는 호주에서 엄청나게 많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해 나갈 다방면의 방법들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워킹홀리데이는 삶의 변환점 그 이상이었다. 거의 매일 배움을 얻고,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생각들을 했다. 정말 거의 매일이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곳들을 여행했고, 정말 많이 걸었고, 건강했고 행복했다.

 

나는 내가 외국인과 그렇게 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워킹홀리데이 이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영어가 되든 안 되든, 문장이 얼마나 잘 구성되든,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든 말든 그냥 우선 뱉고, 궁금한 걸 물어봤다.


안 들려도 우선 질문부터 했다. 주변 지역도 모르면서 어디 사는지 묻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전공들을 물었다. 나는 심지어 외국인을 붙들고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 설교까지 했다. 내가 평생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겁을 먹거나, 아니면 내가 굳이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의 재미를 알게 됐다.

 


창작의 길을 걷는다. 내가 이 세계에 얼마나 발을 담그게 될까 싶었는데, 이렇게나 꾸준히 그리고 많이 담그고 있다. 호주의 가기 전 나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그러니 나는 호주에 있는 동안에도 자꾸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고, 그렇게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나의 온 세계를 통해 느끼고 있었으므로. 인생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보트용품을 파는 회사의 창고에서 주문 물품들을 박스에 정갈하게 담으면서도, 잼공장에서 기계처럼 파나코타를 박스 안에 집어넣으면서도, 마치 냉장고 안 같은 냉기의 샐러드 공장에서 컨베이어 속도에 맞춰 샐러드를 담아 놓으면서도, 농장에서 채소들을 잘라 컨테이너에 담으면서도, 작은 채소들을 땅에 심는 일을 하면서도, 그런 나의 삶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다. 노동의 보람이 느껴졌고, 그곳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의 인생을 알게 되는 게 신기했다.

 

백패커에서 만난 빈, 지나와 주디, 지게차 학원에서 만난 샌디언니, 웨어하우스에서 만난 션, 팀, 토미, 멀리, 마크, 잼공장에서 만난 안드레아와 로라, 루시, 농장에서 만난 베니카, 나나미, 메리앤, 쉐어하우스에서 만난 글로리아, 클레어, 웬디, 브라이언, 그리고 대니와 소피까지. 모든 이들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는 친절함에 감사했고 그들과 짧았지만 소중한 시간을 함께 했다는 점이 감사했다.

 


매일이 정말 신기했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퇴근하면 집에 가서 가만 앉아 무언가를 하던 내가 여전히도 책상 앞에 앉아있는데 그곳이 호주라는 점이, 가끔은 내 앞에 멋진 시티의 풍경과 더불어 바다와 해변이 있었다는 점이 자주 생경하게 느껴졌다.

 

호주의 푸른 하늘이 좋았고, 건조한 바닷가가 좋았다. 큰 해변과 함께 있는 공원들이 좋았고, 그냥 공원들도 좋았고, 태즈메이니아 우리 집 옆으로 있던 해변 산책로, 시드니의 해변 산책로가 좋았다. 태즈메이니아의 부쉬워킹 길들이 좋았고, 건강한 두 다리로 그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특히나 주택가를 지나 인도가 없는 찻길을 걸어 웨어하우스로 출근할 때, 해가 뜨면 바로 일을 시작하는 농장 덕에 붉은 아침 여명과 함께 출근할 때, 때마다 인생이 다이아몬드 같았다. 모든 것이 신선하고 깨끗하고 맑았다.

 


호주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나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이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말이 어느 정도 맞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이미 어느 정도 이룬 사람들을 보고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질투가 났다. 그들은 관련된 전공을 가지고 있거나, 이미 관련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무언가 이룬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앞선 경험이 있잖아, 나는 그런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러면 나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그 이야기를 호주에서 만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브런치에 글을 기고했다. 처음에 그런 말을 했었다. 어느 정도 선에 도착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길의 시작점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모험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그러다 한동안 브런치에 글쓰기를 멈추었다. 인스타그램에 친구들을 위한 글을 썼다.

 

그런데 그걸 쓰다 보니 나는 더 공부를 해야만 했다. 친구들을 더 잘 알기 위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다 소피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엔 그저 별 의미 없이 만들었던 것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모두 연결되었다.

 

나도 결국 그렇게 나만의 모험을 하고 나도 모르는 새에 어느 정도 선에 도달해 있었다. 이것저것 해야 될 것 같아서 하다 보니 이젠 내 손 안에 남아 있는 게 꽤나 많아졌다.

 

인생이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운명의 흐름인 것 같다. 공무원을 하게 된 것도, 사랑의 힘으로 호주에 간 것도, 그런 상태로 소피를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눈 것도, 그 힘에 떠밀리다시피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것도.

 

나는 호주에서 지내면서도 이 흐름 안의 나를 자주 느꼈다. 작가는 꿈조차 두려워 꾸지 못한 어린 나였지만 책을 읽고 시를 쓰던 날들이 있었다. 소피와 함께 손을 잡고 걸을 때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된 내가 생생한 미래에서 그려졌다. 마음이 아픈 이들을 돌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소피를 만난 게 도대체 무슨 운명이었을까?

 


내게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며 살아도 잘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부자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자주 순천의 어느 투룸 방 한편에 누워 있던 내가 떠올랐다. 북서향의 집에 암막 커튼까지 쳐 두어 어두 칙칙한 방 안에 있던 나와, 호주의 푸른 하늘 아래로 나와 있는 내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러면 그 침대 위에 있는 내가 말을 걸어왔다.

 

“너, 거기 어떻게 간 거니? 대단하다!”

 

그러면 나는 나도 몰래 차오른 눈물을 머금은 채 침대 위의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여기 정말 굉장해!”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생각했다. 어떻게 여기에 왔지? 나는 분명 내일 지루하고 또 긴장되는 항해를 나갈 운명이었는데 지금의 내 내일엔 인생이라는 여정의 모험 길이 펼쳐져 있었다.

 

도무지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미래에 대한 상상이 모두 무색할 만큼 예측 불허한 날들이 이어졌다. 하루하루 겪어볼수록 대단하고 가슴 벅찬 날들의 연속이었다. 뻔하고, 예측가능하고, 또 재미없던 옛 시절의 내가 느끼지 못한 격렬한 감정들이 몰아쳤다. 그래서 또 다른 침대 위에 있는 나에게 손짓하고 싶었다.

 

"여기 나와 봐, 정말 믿을 수 없는 벅찬 날들이 펼쳐지고 있어."

 

그러니 난 마지막으로 손짓을 보내려 한다.

 

"알 수 없는 바깥세상으로 눈 딱 감고 한 번만 나와봐. 설렘에 아롱지는 날들을 함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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