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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Oct 16. 2023

태즈메이니아 차박 여행기 - 2

23-03-16


해가 뜨는 걸 보며 아침을 먹고 싶었다. 구름이 전부 걷히진 않았지만 틈새기로 비친 여명이 멋있다.



저 멀리 큰 산이, 햇빛을 받아 빛을 내는 나무가 왜 이리도 멋있는지 모르겠다.



큰 계획만 있고 세세한 루트는 없는데 어젯밤에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서, 계획이 없다. 아무 해변가에 멈춰서 여행지를 찾아본다.



프레이시넷 구역의 와인글라스 베이다. 여기 또한 사진을 보고 별 기대를 하지 않은 곳이다. 사진이 어찌나 밋밋해 보였는지. 그런데 호주는 어딜 가든, 가면 좋다. 가면 가슴이 벅찬다. 가슴이 탁 트이고, 알 수 없는 전율이 인다. 별 감흥이 없었는데 진짜 멋있다. 끝내주게 멋있다.



걸으면서 주책맞게도 나는 가끔 울먹인다. 왜 이렇게 멋진 거야. 이 풍경이 왜 이렇게 멋진 거야. 이런 곳을 누릴 수 있는 이 여행이 왜 이렇게 멋진 거야.



허니문 베이에 들러 점심을 여기서 먹는다. 요즘엔 바다가 내 식당이다.



케이프 트루빌이라고 등대가 있는 곳인데 등대 바로 앞으로는 갈 수 없는가 보다. 주차를 하고 어제 캠프 사이트 옆에 차를 대놓았던 친구들을 만났다. 파크패스가 있는 만큼 여행 루트가 비슷한가 보다. 어디 가는지 물었더니 내 다음 행선지로 간단다. 베이오브파이어? 씨유!



등대의 감흥은 없었는데 풍경의 감흥은 엄청나다. 색채가 정말 그림 같다. 마치 동양화를 내 눈앞에 가져다 놓았나 싶을 정도로 차분한 색채다.



비체노라는 도시를 잠시 들렀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였는데, 화장실 앞도 왜 이렇게 멋있지?



오늘 내 하루는 약간 어수선했다. 어떻게 씻지. 내일은 어딜 가서 자지. 아직 정해놓지 않았다. 발길 닿는 곳이 곧 행선지가 되어가고 있다. 벤치가 보이는 곳에 잠시 멈춰서 밀린 일과를 정리하기도 했다. 여행 기록은 특히 바로 적어둬야 나중에 제대로 꺼내볼 수 있어서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베이오브파이어는 이 바위들이 마치 불타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고 딱 정해진 행선지 없이 이 바위들이 있는 구역을 그렇게 부르는 듯했다.



지금 걱정거리가 많아서 깊은 기쁨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이 걱정은 여행에선 절대 떼어놓고 와야 할 방해꾼이다.


저녁을 먹고 샤워하기 위해 샤워장을 찾았는데 전면 오픈된 샤워장을 만났다. 하하. 다행히 그 옆 화장실 세면대가 큰 덕에 머리를 얼추 감았다. 돈 내고 갈 수 있는 샤워장을 가면 되지만, 그냥 로드트립 여행자라면 이 정도 불편함을 감수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오늘 내내 걱정하던 샤워를, 이렇게라도 마치고 나니 기분이 아주 홀가분하다.



캠핑 사이트는 꽉 차 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데이유즈 공간에 차를 댔다. 오늘 내내 뭔가 이래도 되나? 민폐 행동들을 하고 다닌다. 호주에 놀러 온 어린 여행자를 가엽게 여겨주시기를.




이런 여행을 하며 지금껏 너무 편하게만 여행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내 여행은 진짜 너무 열악한 환경이다. 돈을 주면 절대 할 수 없는 여행이다. 텐트도 없고, 침낭도 없고, 부르스타도 없는 차박 여행. 오늘은 어디서 씻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여행. 차 시트가 그리 편하지 않아서 잠을 자도 그리 편하지 않다.


하지만 정말 값지다. 이 여행을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있다. 나는 24살에 사회에 나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 나이가 너무 일렀다. 돈이 없을 때 해볼 수 있는 경험을 해보지 못하고, 돈으로 하는 경험만을 최고로 여겼던 게 아니었나?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런 여행은 처음인지라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완전 새로이 하게 됐다. 상황에 처해졌을 때 진짜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비치타월, 셔츠, 요가매트로 창문을 가리고 창문 하나로 차 안에 빛을 들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았다. 잠깐 나왔더니 풍경에 말문이 막힌다. 요즘 깨달은 인생이 그렇다. 360도로 볼 수 있는 걸 창문 하나로 보고 있었다. 이 창문으론 밝은 구름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차 밖으로 나오니 이런 멋진 풍경이 있다. 차 안에서 대충 가림막을 떼고 보던 풍경과도 또 다른 풍경이다. 나는 그러니 바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싶다. 이런 풍경을 많이 누려봤으면 해서. 경이로움을 함께 만끽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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