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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Oct 14. 2023

세상살이 신기한 것투성이

23-03-14


어제 비행 편을 바꿨다. 마음이 너무너무 급하기 때문에.



어제는 태즈메이니아의 공휴일이었다. 나는 공무원이 내 경력의 전부이기 때문에 제대로 기획서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보통 본부에서 내려주는 기획안을 조금 수정해서 기획이라고 내놓는 게 전부였다. 기획서를 쓰는 법은 어디서 배우는지 알 수 없어 우선 유튜브에서 기획서 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에 대한 기획안을 하루종일 작성했다.


얼마 전에 몰입에 대한 이야기를 봤다. 정신없이 몰두해서 무언가를 하는 걸 몰입이라고 하는데 세상 사람들 중에 진정한 몰입을 경험하는 사람이 다섯 명 중에 한 명이라 한다. 그걸 모든 사람들이 겪어보진 못한다는 걸 알고 좀 놀랐다.


나는 그냥 던져진 일을 할 때에도 엄청 몰입하는 편이다. 기획서를 작성하는 내내 초집중을 했고, 만드는 내내 너무 재밌었다. 행정업무를 할 때 자주 그랬다. 단순하게 문서 만드는 것에도 흠뻑 빠져들어 즐겁게 일을 하곤 했다.


요즘 "몰입은 모두가 경험하지 않는다."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좀 이상한 사람이었구나, 알게 된다. 나는 꽤 무딘 편이다. 체력과 몸 근력, 마음 근력을 키운 탓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엔 온갖 종류의 고통에도 둔감하다.



지난주 수요일 농장에서 스트레칭처럼 다리를 쭉쭉 펴면서 상추 컷팅을 하고서 어제까지 근육통에 시달렸다. 제대로 못 걷고 어기적 댈 만큼 아팠는데도 러닝을 나가본다. 그러다 집 앞에서 왈라비를 만났다. 태즈메이니아는 정말 자연과 가깝다.


뭐든 크게 대수롭지가 않다. 아프면 그냥 참으면 그만이란 마음이다. 근데 이 덕을 내가 톡톡히 봤다. 그러니까 더 "그냥 해" 이런 마음이 가능했던 듯싶다. 나도 물론 그냥 하지 못했을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그 덕에 뭔가 많이 하기도 했구나 싶어 진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그냥 하게 만들 수 있을까? 소피는 언제나 사람을 바꾸는 것을 꿈꾸지 말라 한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냥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냥 하지 못하다가, 그냥 하면서 배우고 얻은 게 너무 많다. 가치 그 이상의 값어치를 품고 있는 것도 있다. 나는 이 즐거움과 기쁨을 나만 알고 싶지가 않다.


요즘 내가 중점적으로 연구해 보는 과제다. 세상은 결국 나만의 렌즈로 보게 되는 건데 나의 렌즈가 평범하지는 않은가 보다. 그래서 조금 어렵다.


오늘은 퇴근하며 유키를 다시 만났다


나는 내가 아주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평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신기하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신기하다. 모든 인간이 다 다른 제각기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


어느 강연 영상에서 자기가 뭘 잘하는지 보려면 중학교 때 잘했던 과목을 보라는 이야길 들었다. 나는 어쩌면 그때부터 조금 달랐는지도 모른다. 나는 특이하게 도덕을 진짜 잘했다. 한국에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과목이다. 그래서 나도 그때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근데 공부를 안 했는데도 맨날 내가 도덕은 1등이었다. 신기하게도.


요즘 나는 그게 나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단한 철학가는 아니다. 철학 책 고작 몇 권 읽고 얘기하는 풋내기에 불과하다. 그 풋내기가 내린 결론으로 철학은 수천 년을 이어온 삶의 진리, 변치 않는 소중한 가치라는 것. 도덕은 철학의 많은 부분을 차용하고 있다.


나는 행복을 철학 책에서 많이 찾았다. 몰입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도 철학책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철학책을 읽으며 사랑에게 이런 감상평을 남겼다.

"철학은 어쩌면 세상 사람들과 더 잘 살기 위해 필요한 학문 같아"

그때부터 어렴풋이 나는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중요성을 알아챘다.



요즘엔 언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머릿속에 지식이 꽤나 많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나한테 당연한 거라 이야기하면 뭔가 대단한 취급을 해주는 걸 느낄 때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잘난 척하네 이런 취급을 받을 때도. 아마 철학자들도 많이 당했을지 모른다. "잘난척하지 마!" 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겠지. 근데 철학자들은 사람들을 사랑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마음을 이해하겠다. 사랑이 자꾸 이해하고 싶게 한다는 걸. 나는 이미 내가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 철학자들이라고 달랐을까? 하지만 자꾸 공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결국 사랑하는 마음 덕이다. 내가 사랑하는 세상 사람들은 자주 나를 공격해 온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사랑하련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



오늘은 빨래를 하고, 커피를 얼려놓고, 샌드위치를 싸고, 짐도 싸고, 심리학 강의를 거의 다 들었다. 나는 내일 이 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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