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배 Zoe Aug 22. 2023

호주 외국인노동자의 주간일기

22-12-09


별일이 없는 게 별일 같은 희한하고 이상한 하루하루다. 출근길과 퇴근길은 여전히 즐겁고, 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삼 형제가 있다. 셰인과 트로이 두 명은 창고에서 일하고 큰 형인 제임스는 사무실에서 일한다. 그중 둘째인 셰인이 코로나에 걸렸다. 덕분에 피킹 속도가 더뎌서 내가 포장할 게 없다. 한 두 개 정도 가져오면 되는 주문 건은 내가 피킹을 다니기 시작했다.


토미는 말한다. "Zoe working too hard!" 나는 그러면 "No, It's too easy!"하고 답한다. 요즘 바쁜 일에 적응이 되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오히려 편치 않다.



토미가 갑자기 박스를 가지러 가서 한참을 고민하다 이런 원통을 들고 왔다. 원통을 쓱싹쓱싹 자르더니 기다란 철심을 넣는다. 지금까지 없던 포장 방식이다. 토미도 이걸 만들고 뿌듯했는지 본인이 대학에서 패킹코스를 4년간 배운 인재라고 나에게 으쓱댄다. 나는 그러면 "Amazing!", "Impressed!!" 답한다. 토미가 그 답을 듣고서 여기서 이런 고급 포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토미와 피터, 그리고 조이라고 한다. 감격해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토미가 한동안 내게 넘버원 캐주얼이라며 나를 칭찬했었다. 내가 모든 걸 다 안다며 놀라는 척도 했다. 그런데 새 퍼머넌트 워커 마크가 오고 나니 마크에게 넘버원을 붙인다. 참, 섭섭한 일이다.


나는 아주 오래 일 할 생각이 없고, 캐주얼인 만큼 이곳의 너무 많은 걸 알고 싶진 않다. 그런데 영업사원인 팀이 창고에 주문 건을 가져다주러 올 때마다 나에게 회사의 사정에 대해 말해준다. 궁금해할 법한 것들을 미리 알려준다. 예를 들면 "주문 건에 적힌 TMD는 태즈메이니아에 있는 창고로 보내는 거야~" 같은 것들이다.



직장에선 크리스마스 준비에 한창이다. 덕분에 얇은 은박지가 온 창고 바닥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그리고 얄궂은 트리도 하나 생겼다. 모두 헤이미쉬의 딸 덕분이다. 직원들한테 쓰라고 모자도 나눠준 덕에 형광옷을 입은 산타가 되어 일하는 중이다.



다음날 출근해 보니 트리를 누가 어느 박스 안에 구겨 넣어버렸다. 작업장에 돌아다니는 헤이미쉬 딸에게 모두가 친절하지도 않은 걸 보면 여기도 별 다를 바 없는 곳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헤이미쉬 딸을 위해 산타 모자를 쓰고 일하는 워커도 고작 6명 정도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빠를 데리고 온 사무실을 쏘다니며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데 별 말 없는 게 다른 점이긴 하구나 싶어 진다. 헤이미쉬가 일을 할 수 있게 라쟈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피킹을 알려주고 함께 피킹을 한다.





태즈메이니아로 이동할 준비를 시작하려 한다. 며칠 전 샌디언니가 "워홀 때 태즈메이니아를 가볼 걸"이라는 말을 해서 태즈메이니아에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열심히 와이너리에 지원했다. 나는 와이너리에 가기 위해 포크리프트 자격증을 땄었던 거였다.


요즘 크리스마스 홀리데이에 대해 직원들이 한창 얘기 중이다. 나는 지금껏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마크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12월 24일부터 1월 3일까지 쉰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긴 휴일이 생겼다. 그동안 뭘 해야 할지 구상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다. 미뤄둔 계획들을 해치워야 할 때가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학사만 3개인 사람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