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를 읽고
분노할 일이 참 많은 요즘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듯,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이 말은 소년범을 대할 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말이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한 아이가 망가지는 데도 온 집안과 마을이 필요하다. 이 아이들이 모두 엄벌을 받아야 한다면, 아이들을 유기하고, 방치하고, 학대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부모와 가족, 그 아이들 중 누군가와는 같은 마을 사람들인 우리도 함께 엄벌을 받아야 한다.
괴물 같은 아이들이 저지르는 강력사건에 적절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몇몇 아이 때문에 나머지 아이들에 대한 처벌이 덩달아 엄해지고, 그나마 턱없이 부족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줄어들까 무척 염려된다.
“법은 표적항암제가 아니다. 법은 개개인에게 맞춤 적용할 수 없다.”
소동파의 시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인자함은 지나쳐도 화가 되지 않지만 정의로움은 지나치면 잔인하게 된다.” 정의는 본질적으로 불의와 부정을 배제한다. 하지만 불의와 부정을 단죄는 해도, 도려내고 폐기해선 안 된다. 거기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다루는 이상 정의는 법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세상을 하나의 가치로 아우르기 위해 모든 단어를 단 하나의 단어에만 조응시켜야 한다면, 나는 사랑과 짝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