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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l 02. 2023

고통은 더 큰 행복을 수반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를 읽고

“독서모임이니 걸출한 책도 읽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고전 비문학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두 달 전 <사피엔스>를 시작으로, 금주 주말에는 <총, 균, 쇠>, 두 달 뒤 다음 타자로는 <이기적 유전자>가 예정되어 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취향은 비문학을 좋아하는 사람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나는 그중 문학, 특히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을 대표하고 있다. 소설만 읽어서 편식하지 않으려고 독서모임에 들어왔는데, 읽을수록 더욱 소설이 그립다.


내가 비문학은 별로 안 좋아하고 소설만 좋아한다고 얘기를 하면 비문학파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소설은 일상에 별로 도움이 안 되지 않아요?” 그러면 나는 더 의아하다. “비문학이 더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 지식들이 제 머릿속에 있어야 할 필요성을 잘 못 느끼겠어요. 소설은 느끼는 바라도 있지.

(*여기서의 비문학은 자기 계발서, 실용서적 등을 제외한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는 서적으로 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총, 균, 쇠>를 꾸역꾸역 다 읽은 것은 오롯이 내가 독서모임 운영진이기 때문이다. 토론을 진행하는 운영진 수에 맞게 모임 자릿수가 개설된다는 의무감에, 나는 6월 내내 지지부진하게 붙잡고 있던 <총, 균, 쇠>를 읽어내야만 한다는 압박으로 지난 주말과 이번 주 평일을 독서에 바쳤다. 모임 당일인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3시, 간신히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내가 글자를 읽기만 했지, 내용을 소화한 게 아니라는 불안감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다시 한번 밑줄 쳤던 중심내용을 훑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잠드는데, 철없던 대학생 때 간신히 1회 독을 끝내기에 급급했던 시험 전날 밤샘이 오버랩되었다.


정말 스불재다. 시험도 아니고 회사일도 아니고 그냥 취미생활인데 이렇게 괴로울 일인가! 과거의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 책을 읽고 모임을 진행하겠다고 했던가. 나는 뒤통수 맞아서 기절한 뒤 눈 뜨면 모임이 끝난 시점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진심 섞인 농담을 할 정도로 심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각자 읽은 내용을 나누려고 모였는데, 한 명 한 명 마주한 얼굴에서 엄숙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책과 사투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왔을 서로에게서 묘한 동지애가 느껴졌다.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서로 웃음을 터뜨렸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진행된 모임은 정말 최고의 모임이었다. 두껍고 내용이 방대한 책이어서인지 이 책을 읽고 모인 사람들은 다들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책 내용을 되짚어 보고, 서로 이해되지 않던 부분, 인상 깊었던 부분, 책의 의의와 책에서 다루는 과거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의 우리 삶에 대한 얘기까지 폭넓게 나눌 수 있었다. 급히 삼켜서 제대로 소화되지 못했던 것들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이었다.


너무 고통만 토로한 것 같지만… 이 책을 돌아보면, 절대적인 활자량이 많아서 제한시간 내에 읽는 게 힘들었지만 읽으면서 매 순간 감탄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당신네 백인이 가진 화물들이 우리 흑인에게는 없는 이유가 뭔가요?”라는 뉴기니인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25년 간 인류의 진화와 역사와 언어 등에 대해 다방면으로 연구해서 이 책을 써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명확하다.


인간 사회의 차별적 발전은 지리적 우연이다.



현재 국가 별로 서로 다른 생활 수준을 가지게 된 것은, 각 대륙을 선점한 원주민의 생물학적 차이, 지적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그 대륙의 기후와 식생의 차이가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의 변화의 차이를 유도했고, 그로 인해 폭발적인 인구 성장이 가능해져 무력, 집단면역, 기술 발전, 문자 등을 이룬 결과 더 벌어지게 된 차이 탓이다. 지금에야 이 주장이 보편적인 주장이더라도, 이 책을 출간할 당시에는 국가 별 문화 차이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주장도 만연했다고 한다.


패러다임을 바꾼 책이라니 그 얼마나 뜻깊은 책인가. 이 책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에 위안이 되었을까. 읽는 내내 투덜대었던 다소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치밀한 근거자료와 논리전개, 흑인이 백인보다 열등한 게 아니라는 주장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감동이었다. 그 어마무시한 활자량이 힘들었지만 기존의 통념을 뒤집기 위해서는 철저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이 책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 책은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진 못할 것이다. 대륙 간 인구의 이동이나 문화 발전의 역사를 내가 외울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굳이 이 책을 읽느라 시간 낭비를 한 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너무 기분이 좋고 행복한 것은, 마치 종강한 듯한 해방감과 함께 읽어낸 모임원들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그 시간이 고통스러웠던 탓이다. 그리고 결국은 또 한 권의 책을 다 읽어 냈기 때문이다. 그  기쁨이 알량한 자기 만족감이나 지적허영심에 불과할지라도, 어쨌든 지금 나는 기분이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또 이렇게 나를 괴롭게 할 일들에 참여할 것이다. 나는 늘 이렇게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확실한 건, 스불재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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